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유고랜드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현대 === 1904년부터 한국인, 혹은 고려인들 또한 썩을 대로 썩어 들어간 조선을 떠나 머나먼 이곳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한다. 1930년까지 약 200만명의 한국인들이 이주했으며 소련의 고려인 억압 정책으로 인해 소련에 거주하던 300만명, 그리고 조선에서 식민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이주한 500만명까지 합쳐서 총 1000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 드럽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주했냐면, 똑같은 식민 지배지여도 비교적 변두리라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 이곳 시디벨아베스였기 때문이었다.],영원히 변두리 깡촌으로만 남을 것 같던 이곳에 유래 없는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라 마베라의 식민지 신분. 라 마베라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인구 증가에 관심을 가졌고, 느슨하게 풀려있던 목줄을 슬슬 죄여오기 시작했다. 이런 라 마베라의 행태는 1939년 즈음 세테트에서 석유가 발견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고랜드인(아랍인)들 또한 식민지배의 전적이 있던지라 거센 저항(라 마베라 시디벨아베스 총독부 방화 사건 등)과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지속되는 반발에, 고랜드 반란이란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마베라는 결국 1940년 7월 21일 시디벨아베스 독립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떠나갈 듯 한 환호성도 잠시, 한국인과 아랍인은 시디벨아베스[* 한국명으론 신한성. 문자 그대로 새로운 한성(서울)이란 뜻이다. 현재까지 시디벨아베스의 지명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특히 이주민 2~3세대 노년층이 자주 애용하며, 보통 시디벨아베스를 신한성이라 지칭한다. 당연히 시디벨아베스 해도 알아듣기는 한다만. 특이한 케이스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국가를 유고랜드가 아닌 신한성으로 소개하기도 한다.]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두고 다시금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평생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한 한국인, 그리고 자신들이 일군 모든 것을 뺏길 처지에 놓인 아랍인.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유고랜드 땅에 끝없는 전운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 자세한 내용은 [[유고랜드 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0년 2월 1일, 1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아랍인들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진 이 전쟁은 고랜드에서 지원받은 첨?단 무기[* 출처 미상의 미제 땅크, 자주포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몇 대로 무장한 아랍인들이 우세일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철제 농기구와 쪽수로 무장한 한국쪽 군의 기세를 꺾기는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론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아랍인들은 살림살이를 내다버리고 아부 쿠찬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1940년 6월 28일, 2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이번엔 한국인들의 역공이었다. 이번에는 한국인들 또한 본국에서 공급받은 머스킷총으로 단단히 무장하였다. 아랍인들 또한 태세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수적과 양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파죽지세로 다가오는 한국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그들의 영역은 모래밖에 없는 가자우에트 이남으로 축소된다. 이때부터 한국인과 아랍인의 사이는 급격하게 악화되었으며, 2025년 현재까지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도권은 이제 한국인들로 넘어갔다. 1940년 9월 1일, 국가건국위원회가 창설되었으며, 대표 33인[* 가나다순으로 강영림, [[강학영]], 권필상, 김기택, 김녕국, 김동한, 김대웅, 김민식, 김병추, 김신윤, 김안, 김위명, 김재성, 김지춘, 김태효, 김현, 민주혁, 박리원, 박무찬, 박춘환, 박태구, 서승림, [[송유환]], 안유월, 연형백, 이만교, 이채한, 임영춘, [[정찬백]], 조성표, 천영빈, 홍설, 황영호]이 지정되었다. 이후 국가건국위원회는 건국까지 약 9개월간 정부를 구성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국명과 국기를 제작했다. 특이하게 국장은 공모전을 거쳐 최종 선정했는데, 아부 쿠찬에 거주하는 평범한 농부 장범형이 낸 안이 채택되었다.[* 상금도 주어졌는데, 자헤단에 있는 집 한 채였다.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10억 정도라고.] >나는 자랑스러운 大韓의 國民이요, 大韓은 나의 祖國이로다. >---- >국가건국위원회 대표 33인 | 신한성 헌장 제 1장 >유고랜드는 自由民主主義에 立脚한 共和國이다.[* 유고랜드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이다.] >---- >유고랜드 헌법 제 1조 1항 1941년 5월 28일, '''유고랜드가 건국되었다.''' 제 1대(초대) 대통령은 통합당 소속의 [[정찬백]]이 당선되었으며, 건국식과 취임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