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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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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물로의 역진출 (1961~1972) === 전쟁은 윌리스에게 원료의 무서움도 가르쳤다. 1960년 설탕과 밀가루 공급이 끊겨 필드 바 생산이 3주 동안 멈추었고, 국방부로부터 계약 해지 경고까지 받았다. 새뮤얼은 이때 "원료를 사는 회사는 원료를 파는 회사에게 진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지금도 윌리스의 사훈처럼 인용된다. 윌리스는 1961년 톨루즈 제분소를 인수한 데 이어, 1963년에는 파산한 벨포르 평야 곡물조합의 엘리베이터 17기를 사들였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농가에서 곡물을 사들여 저장하고 철도와 배로 내보내는 거점 시설로, 이것을 가진 쪽이 지역의 곡물 흐름을 쥔다. 윌리스는 1960년대 내내 경영난에 빠진 지역 엘리베이터를 사 모아 1972년에는 벨포르 평야에만 140기가 넘는 엘리베이터를 거느렸다. 결정적인 기회는 정부의 식량원조 사업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1962년 대외식량원조법을 제정해 국내 잉여 곡물을 사들여 [[북산]], [[빌베른]], [[웨스타시아]] 등 동맹국과 랜드해협 바깥의 개발도상국에 원조했는데, 곡물의 수매·저장·선적은 민간 업체에 맡겼다. 엘리베이터망을 갖춘 윌리스는 이 사업의 최대 수탁업체가 되었고, 1969년에는 원조 곡물의 41%를 윌리스가 취급했다. 정부의 식량원조는 공산권의 영향력을 막는 냉전 외교 수단이었고, 윌리스는 그 외교의 물류를 떠맡으며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업체가 되었다. 1964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해외 판매와 해운 계약, 환 위험 관리를 맡는 자회사 윌리스 인터내셔널 SA를 세웠다. 스위스의 낮은 세율과 엄격한 기업 비밀주의를 활용한 것으로, 이 법인은 훗날 금수 위반 의혹과 이전가격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66년에는 옥수수 습식 제분 공장을 세워 전분과 포도당 시럽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8년에는 곡물 운반선 6척으로 해운 자회사 윌리스 마린을 출범시켰다. 1972년 윌리스의 매출은 31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 해 처음으로 곡물 부문 매출이 소비재 부문 매출을 넘어섰다. 사내에서는 이 해를 "과자 회사가 곡물 회사가 된 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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