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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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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회의 결성과 집단 행동 === 6월 19일,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은 '웨스트로 참사 유족회'를 결성하고 정부의 직접 사과와 책임자 문책,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요구하였다. 유족회는 콜턴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했으나, 대통령은 "사법절차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6월 27일, 유족회는 에포르에서 합동 장례를 마친 뒤 벨포르 대통령궁 앞 광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자식의 주검 앞에 국가가 없었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배상 대책을 요구하였다. 농성은 41일간 이어졌으며, 그중 유족 대표 9명과 연대 참가자들이 단식에 참여하였다. 농성 기간 중 3명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이 농성에는 시민·학생·종교계 인사가 잇따라 동참하였다. 당시 대학 재학 중이던 [[루스탈지아 그래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2010년 가을 [[루이나 국립대학교]]에 입학한 뒤 병역을 이행하고 복학한 상태였으며, 12일간 단식에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 국가는 '사고'라는 말로 이 비극을 덮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건 사고가 아니라 죽음을 외면한 체제 그 자체다. 우리는 그 무감각에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 루스탈지아의 단식 참여는 훗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일화로 남았다. 그는 2021년 취임 연설에서 이 시기를 직접 거론하며 "그날의 분노와 부끄러움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고 말하였다. 콜턴 대통령은 농성 41일간 끝내 유족과의 면담을 거부하였다. {{{#!folding [ 유족회 성명 「죽음을 덮지 마십시오」 펼치기 · 접기 ] > 우리는 지금, 불타버린 관람석 위에 말을 얹고 있습니다. > 그 말은 "사고였습니다"라는 한마디입니다. > 그리고 그 말은 너무나 조용히, 너무나 단호하게,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덮고 있습니다. > > 122명이 사망했습니다. > 그들 중 일부는 아이였고, 일부는 첫 직장에 다니던 청년이었으며, 어떤 이는 평생 처음으로 경기장을 찾은 사람이었습니다. > > 3일 전부터 냄새가 났습니다. > 2일 전,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 1일 전,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 당일, 굉음이 울렸고 > 지금은 고요함만이 남았습니다. > > 그 사이,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 책임자는 "확인 중"이라는 말만을 반복했고, 대통령은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그것이 다였습니다. > > 국가가 죽음을 덮을 때, 국민은 그것을 꺼내 보여줘야 합니다. > 죽음을 덮지 마십시오. >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 > ― 웨스트로 참사 유족회, 2015년 6월 27일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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