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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행 == 영토 철수와 포로 교환은 대체로 기한 안에 이루어졌다. 협상국군은 1964년 8월 28일 체르드에서 철수를 마쳤고, 포로 송환도 같은 달 끝났다. 체르드의 해협 연안 요새 해체는 1965년 4월 감시위원회가 완료를 확인했다. 배상은 처음 3년 동안 일정대로 지급되었다. 그러나 체르드와 라 마베라는 전쟁과 봉쇄의 후유증으로 경제난에 빠졌고,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배상금 지급을 여러 차례 미루었다. 배상이 강요한 긴축은 두 나라에서 좌파 세력이 급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반면 사비에트는 1968년 해난 보상을 완납했다. 감시위원회도 어려움을 겪었다. 체르드는 사찰이 주권 침해라며 거듭 반발했고, 사찰단의 활동이 제한되는 일이 잦아졌다. 사비에트는 수상함 톤수 제한은 지켰지만, 조약에서 빠진 잠수함과 미사일, 우주 전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1964년 10월 안토노프를 밀어내고 서기장이 된 브레자코프 체제에서 이 방향은 더 뚜렷해졌다. 해협 조항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콘스탄티노폴은 자국이 참여하지 않은 조약의 해협 조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고,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1960년대 내내 이어졌다. 1970년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은 이 긴장이 폭발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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