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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클레르 댐 붕괴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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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생클레르 댐과 말비에르 국가과학단지는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으로 만들어졌다. 1962년 플로렌시아 정부는 첨단 연구시설에 필요한 전력과 냉각수를 한곳에서 해결하기 위해 말비에르강 상류에 대형 댐을 짓고 그 아래 계곡에 국가 과학단지를 조성하는 구상을 확정했다. 높이 104m, 길이 460m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은 1971년 준공되었고, 3억 8천만㎥를 담는 생클레르호가 그 뒤에 생겼다. 과학단지는 댐에서 하류로 2.4km 떨어진 계곡 바닥에 들어섰다. 1966년 「과학단지 조성특별법」에 따라 1968년 착공해 1974년 1단계를 준공했고, 1984년까지 확장을 거듭해 국립 계산과학연구원과 국립 소자연구원, 생명과학동, 열원·변전 설비를 갖춘 플로렌시아 최대의 연구 거점이 되었다. 주간 상주 인력은 6,800명에 이르렀으며, 연산 설비와 실험 장치를 쉬지 않고 돌리기 위해 야간에도 400명 안팎이 근무했다. 1983년 정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댐의 원격 감시와 수문 제어를 과학단지 국립 계산과학연구원의 중앙 연산 설비로 통합했다. 댐 관리소에는 최소 인원만 남았고, 기초 갤러리의 누수량과 양압력, 수문 개도 같은 계측값은 모두 단지의 연산 설비를 거쳐 처리되었다. 이 통합은 당시 효율적인 첨단 관리 체계로 홍보되었지만, 참사 이후에는 댐의 안전을 연구시설의 컴퓨터에 맡긴 결정으로 비판받았다. 댐의 기초에 대한 우려는 준공 직후부터 있었다. 우안 기초 암반에는 시공 당시 그라우팅으로 보강한 작은 단층이 지나갔고, 1970년대 후반부터 이 구간의 누수량이 서서히 늘었다. 1984년 보강 공사가 이루어졌지만, 누수량은 1986년 여름 다시 기준치에 가까워졌다. 그해 10월에는 3주 동안 평년의 두 배가 넘는 비가 내려 생클레르호의 수위가 상시 만수위를 넘나들었다. 하류의 로솔시는 말비에르강이 계곡을 빠져나오는 곳에 자리한 인구 2만 6천 명의 도시였다. 댐이 들어서기 전부터 강변 저지대에 구시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댐 준공 이후에는 홍수 걱정이 사라졌다는 인식 속에 강변 개발이 더 늘었다. 댐 붕괴에 대비한 하류 경보 체계는 댐 관리소가 경보를 발령하면 로솔 시청을 거쳐 시가지 사이렌 41기가 울리는 방식이었지만, 실제 붕괴를 가정한 대피 훈련은 준공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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