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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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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랜드 침공 === 1978년 고원의 [[고랜드]]에서 인민민주당이 권력을 잡고 공산 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급진적인 토지 개혁과 종교 탄압은 곧 전국적인 반란을 불렀다. 1979년 3월 헤라트 반란으로 사비에트인 고문들이 살해되고 고랜드 혁명평의회 의장 타라키가 파병을 요청했을 때, 총리 콘스탄틴 D. 루진은 이를 거절했다. 내전 끝에 스스로 혁명을 이룬 사비에트 지도부는 지도부 교체만으로 들어선 정권이 강압적인 변혁을 밀어붙이면 어떤 반발을 부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황은 1979년 9월 피델 성베르트가 타라키를 죽이고 권력을 잡으면서 바뀌었다. 성베르트는 사비에트도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크라슬리스크에서는 그가 루이나 쪽으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의심까지 나왔다. 브레자코프는 이 무렵 이미 병석에 있었고, 결정은 정치국의 소수가 내렸다. 12월 6일 정치국은 제176호 결정서로 병력 500명의 파견을 승인했으나, 12월 12일 국가보안위원회 의장 유리 V. 아브데예프와 국방인민위원장 바실리 I. 체르냐호프를 중심으로 한 밀실 합의가 성베르트를 제거하고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1979년 12월 24일 사비에트 제40군은 접경 도시 테르미스크 인근의 국경 강에 부교를 놓았고, 이튿날부터 국경을 넘었다. 특수작전 '폭풍 333호'로 성베르트를 제거한 사비에트는 카르말을 새 지도자로 세웠다. 이렇게 시작된 [[사비에트-고랜드 전쟁]]은 9년 넘게 이어졌다. 각지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고랜드로 모여들었고, 1983년부터 루이나가 이들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 전쟁은 수렁이 되었다. 고랜드 측 선전은 이 전쟁을 "아랫땅이 다시 물길을 빼앗으러 왔다"는 분수 전쟁의 언어로 묘사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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