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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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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지도 체제 === [[세르게이 안토노프]]는 농업 담당 서기로 집단화의 뒷수습을 맡아 온 인물이었다. 정치국 안에 뚜렷한 세력 기반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그를 타협 후보로 만들었다. 집권 초기 그는 서기장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노스탈린식 운영을 버리고 정치국의 합의에 따른 집단지도를 내세웠다. 당은 서기장이, 정부는 총리가, 국가 의전은 최고인민평의회 주석이 나눠 맡는 구도가 이때 자리 잡았다. 이 구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총리 니키타 인터루쇼프였다. 대외 경제를 맡아 온 그는 총리가 된 뒤 외교와 대외 원조를 사실상 도맡으며 해외에 '사비에트의 얼굴'로 알려졌다. 서방 언론과 청평이 그를 사비에트의 지도자로 부르는 일이 잦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안토노프가 당과 국내 경제를 쥐고 인터루쇼프가 대외 노선을 이끄는 분업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동부 정책도 인터루쇼프의 몫이었다. 그는 1954년 동사랜드 봉기 가담자를 부분 사면하고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를 다시 허용하는 한편, 1955년부터 본토의 슬라브계 주민 수십만 명을 동사랜드 저지대로 이주시키는 '동부 개척 사업'을 벌였다. 회유와 정착으로 동부를 붙들어 두려는 정책이었으나, 산악의 인민적군은 해방구를 유지하며 항전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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