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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랜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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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사랜드 공화국'''(사랜드어: Саландска Република {{{-2 살란드스카 레푸블리카}}})은 1917년 3월 16일 [[장미 혁명]]으로 [[제정 사랜드]]의 마지막 차르 [[라자르 2세]]가 퇴위한 때부터 1949년 10월 7일 [[사비에트]]가 수립될 때까지 32년 동안 존속한 국가이다. 이 기간은 임시정부(1917~1920), 1920년 헌법에 따른 의회 공화정(1920~1934), [[드라고슬라프 M. 페트코비치|페트코비치]]의 군부 정권(1934~1945), 종전 뒤의 과도정부(1945~1949)로 나뉜다. 군부 정권 아래에서도 1920년 헌법과 '공화국'이라는 국호는 형식상 유지되었다. 장미 혁명을 이끈 것은 공화파 정치인과 자유주의 지식인, 도시 노동자 조직이었다. 공화파의 [[밀란 S. 보이노비치]]가 이끈 임시정부는 [[제1차 세계 대전]]을 계속하기로 했고, 1918년 11월 [[협상국]]이 이기면서 사랜드는 형식상 승전국이 되었다. 하지만 수백만의 인명과 경제를 대가로 치른 승리는 새 정부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1918년 농노제 폐지와 보통선거를 선포했지만,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땅을 요구하는 농민들이 옛 영지를 점거하면서 평원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워졌다. 임시정부는 군을 동원해 점거를 해산하고 토지 개혁을 제헌의회로 미뤘는데, 이 결정이 이후 30년 동안 사랜드 정치를 짓누른 토지 문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1920년 제헌의회가 제정한 헌법은 임기 7년의 직선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지는 [[이원집정부제]]와, 하원인 [[국민의회(사랜드 공화국)|국민의회]]와 상원인 [[원로원(사랜드 공화국)|원로원]]의 양원제를 채택했다. 보이노비치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공화국은 1923년 제정의 상징인 [[인터그라드]]를 떠나 평원 중부의 공업 도시 [[크라슬리스크]]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공화국 정치는 내내 불안정했다. 의회는 지주 정당·도시 자유주의 정당·농민당·사회주의 정당으로 쪼개져 안정된 다수를 만들지 못했고, 1920년부터 1934년까지 14년 동안 내각이 23차례 바뀌었다. 농노제는 폐지되었지만 토지 개혁은 지주 출신 의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어, 해방된 농노 상당수는 옛 지주의 소작농으로 남았다. 동남부 [[카스탄족]]이 요구한 언어·교육 자치도 단일 국가 원칙에 막혔다. 1921년에는 사회주의 정당의 급진파가 떨어져 나와 [[사랜드 공산당]]을 창당했고, 이듬해 [[이오시프 노스탈린]]이 서기장에 올랐다. 1929년 [[대공황]]으로 곡물 가격이 폭락하자 평원의 농촌은 파산 상태에 빠졌고, 1932년 각지에서 소작 폭동과 공장 점거가 잇따랐다. 의회 정치가 혁명을 막지 못한다고 본 지주·기업가·장교단을 등에 업고 1934년 5월 페트코비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국가재건위원회를 세웠다. 군부 정권은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을 불법화하고 이탈리아식 조합주의를 도입했으며, 국기·국장·국가를 모두 바꾸었다. 1941년에는 [[추축국]]과 조약을 맺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공산당은 무장 조직 [[인민군(사랜드)|인민군]]을 결성해 파르티잔 투쟁에 나섰고, 1944년 가을 전황이 기울자 군부 온건파가 페트코비치를 체포하고 연합국과 휴전 교섭에 나섰다. 1945년 5월 휴전이 발효되었을 때 평원의 도시와 철도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전쟁 사망자는 약 300만 명에 이르렀다. 휴전 뒤 연합국 관리위원회의 감독 아래 [[스테판 R. 일리치]] 총리의 과도정부가 들어서 1920년 헌법과 공화국의 상징을 되살렸지만, 행정과 군의 요직은 여전히 군부 정권 출신이 차지했다. 해방구에서 이미 지주의 땅을 나눠주고 있던 인민군은 무장 해제를 거부했고, 1946년 3월 총선이 부정 선거로 끝나자 4월 12일 총공세에 나섰다. 이것이 [[붉은 혁명]]이다. 1949년 봄 수도 크라슬리스크가, 8월에는 과도정부의 마지막 거점 인터그라드가 함락되었고, 일리치를 비롯한 과도정부 지도부는 해외로 망명했다. 1949년 10월 7일 노스탈린이 크라슬리스크에서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수립을 선포하면서 사랜드 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사비에트의 공식 역사는 1917년의 장미 혁명을 '미완의 혁명', 1949년의 붉은 혁명을 그 완성으로 규정하며, 그 사이의 공화국을 지주와 장교들이 혁명을 가로챈 시대로 그린다. 반면 인터그라드 포위 때 해외로 빠져나간 사비에트 망명자 사회는 공화국을 '잃어버린 사랜드'로 기억했고, 공화국의 삼색기는 수십 년 동안 망명자 사회의 상징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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