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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랜드 공화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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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노비치 시대 (1920~1927) === 보이노비치의 7년은 연립 내각의 잦은 교체로 시작되었다. 첫 총리인 공화민주당의 두샨 P. 랄레비치는 공화민주당과 농민당의 연립 내각을 이끌었지만, 토지 법안을 두고 두 당이 갈라서며 1년 반 만에 물러났다. 1921년 사회당 급진파가 떨어져 나가 [[사랜드 공산당]]을 창당했고, 1922년 노스탈린이 서기장에 올랐다. 1921년 행정구역법은 제정의 총독부를 폐지하고 고원과 카스탄 산지를 일반 현으로 나누었다. 고원의 이슬람 법정과 부족 원로 회의도 폐지되자, 1922년부터 1923년까지 아바나를 비롯한 고원 곳곳에서 시위와 납세 거부가 이어졌고 공화국은 이를 군대로 진압했다. 1923년에는 수도를 인터그라드에서 크라슬리스크로 옮겼다. 평원에서는 물과 땅의 싸움이 이어졌다. 수문을 쥔 마을들은 소작 조건이 나쁜 지주의 땅으로 가는 수문을 닫는 '물 파업'을 벌였고, 지주들은 소작농을 쫓아내고 땅을 놀리는 '땅 봉쇄'로 맞섰다. 1921년부터 1926년까지 내무부가 집계한 물 파업만 2,300건이 넘었다. 지주들은 루이나에서 들여온 디젤 양수기로 자기 땅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양수기 지주'는 1920년대 평원의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1924년 선거에서 사회당이 88석으로 약진하자, 사회당의 토도르 K. 파블로비치가 농민당과 손잡고 사랜드 최초의 좌파 내각을 세웠다. 파블로비치 내각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주 땅을 유상으로 사들여 소작농에게 나누는 토지 개혁법을 국민의회에서 통과시켰지만, 1925년 3월 지주와 옛 관료가 장악한 원로원이 이를 부결했다. 국민의회가 재의결에 필요한 3분의 2를 모으지 못하면서 법안은 폐기되었고, 파블로비치 내각도 그해 12월 무너졌다. 이것이 공화국이 토지 개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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