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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사태관리령(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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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의 일상화 === 1972년 5월부터 1978년 10월까지 이 영에 따른 비상사태는 모두 63차례 선포되었고, 갱신은 200번이 넘었다. 가장 오래 이어진 곳은 남부의 항구도시 올덴버그였다. 올덴버그 마피아와 롱비치의 사보이아 조직이 부두를 두고 싸운 1975년부터 1979년까지의 항만 전쟁 동안, 올덴버그 구항 일대는 1976년 3월부터 군정이 들어설 때까지 2년 7개월 동안 거의 한 번도 비상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구항 주민들에게 야간 통행 금지와 검문은 날씨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가장 큰 비상사태는 1977년 [[뒤발 납치 사건]] 때의 벨포르였다. 4월 5일 앙리 뒤발이 납치된 당일 선포된 비상사태는 그가 시신으로 발견된 5월 26일까지 51일 동안 이어졌다. 벨포르에는 검문소 400여 곳이 들어섰고, 야간 통행 금지 속에 경찰은 아파트 단지를 한 동씩 수색했다. 그러나 뒤발이 갇혀 있던 벨포르 남동부의 아파트는 끝내 수색되지 않았다. 사건 3주째에 은신처가 있는 지역을 지목한 익명 제보가 있었는데, 비상사태 아래 하루 수천 건씩 쏟아지던 제보 속에서 그것은 수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1982년에 이 사실이 확인되자, 비상권한이 많다고 수사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나왔다. 1977년 6월 「[[반테러 임시조치법(루이나)|반테러 임시조치법]]」이 제정된 뒤에는 비상사태 아래에서 검문으로 붙잡힌 사람이 그 법의 예방구금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시사주간지 《코망테르》는 1978년 초 이를 두고 "루이나에서 비상사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날씨"라고 썼다. 1978년 10.10 군사반란 뒤 국가비상위원회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 영의 비상사태는 의미를 잃었다.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이 무너진 뒤에도 비상사태는 다시 일상이 되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이 영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은 두 번뿐이었고, 마테르 전쟁 때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베인브리지]] 정부는 이 영 대신 계엄과 전시비상령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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