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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 북산의 고대사는 흔히 고북산(古北山)이라 불리는 왕국의 시대에서 시작된다. 고북산은 북방 고원지대와 산악지대를 기반으로 성장한 왕국으로, 다수의 부족 연맹체가 하나의 권력 아래 통합되면서 탄생하였다. 이들은 비옥하지는 않았으나 견고한 토지를 경작하며 농업을 유지했고, 동시에 목축과 사냥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생활 양식은 고북산 사회를 강인하고 전투적인 성향으로 이끌었고, 일찍부터 외부 침략에 대비한 군사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다. 남쪽 국경을 접한 사랜드 제국은 당시 랜드해협에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군림하며, 주변의 모든 나라를 종속시키려 했다. 사랜드는 고북산을 단순한 변경 부족국가로 보지 않고, 반드시 제국 질서에 편입해야 할 전략적 대상이라 규정했다. 그리하여 사랜드는 수십 년 간격으로 세 차례에 걸쳐 고북산 정복을 시도했다. 첫 번째 침공에서 사랜드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고북산 남부 평야 지대를 장악하려 하였다. 그러나 고북산 전사들은 산악을 오가며 매복과 기습을 반복했고, 험준한 지형은 대군의 움직임을 크게 제약했다. 사랜드군은 보급로가 끊기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침공은 보다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사랜드군은 성곽과 도시를 점령하며 일시적으로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고북산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각지의 부족 세력과 귀족이 독립적으로 항전하며 게릴라전을 벌였고, 결국 사랜드군은 점령지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 채 후퇴했다. 세 번째 침공은 사랜드 제국이 총력을 기울인 원정이었다. 사랜드 황제는 동방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병력과 자원을 투입했고, 고북산의 수도를 직접 공격했다. 이 전쟁은 고북산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었다. 수도는 불타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으나, 기적적으로 고북산 왕국은 멸망을 피했다[* 당시 서부에서 로마가 쳐들어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장 수도가 위협받는데 이런 뱐방에 더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었던 것.]. 최후의 방어선에서 왕실과 무사 집단이 결사항전을 벌인 끝에, 사랜드군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겉으로 보자면 고북산은 세 번의 침공을 모두 막아내며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은 치명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농토를 황폐화시켰고, 국고는 텅 비었다. 무엇보다도 왕실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치열해졌다. 전쟁 영웅을 자처하는 귀족과 무사 집단은 국왕의 권위를 부정했고, 왕족 사이에서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가 격화되었다. 결국 고북산 왕조는 스스로 무너졌다. 왕권은 붕괴했고, 각지의 유력 가문과 무사 집단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서로 다투었다. 중앙집권 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수십 개의 성채와 영주국이 난립하였고, 고북산은 장기간의 혼란기에 빠졌다. 이 시기를 후대 역사가들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르며, 북산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시기로 규정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 고대 왕국을 ‘고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중세 이후 새로운 통일 왕조가 ‘북산(北山)’이라는 국호를 다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고북산은 이름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 전쟁과 몰락의 기억은 북산 민족 정체성의 뿌리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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