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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 개혁 === 1861년 정변과 1865년 개항 이후 약 30년 동안 진행된 일련의 개혁을 북산 유신(北山維新)이라 부른다. 개혁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변 세력 내부의 대립과 보수파의 저항 속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첫 단계는 신분제와 관료제의 해체였다. 1869년 문신·무사의 세습 특권이 폐지되었고, 옛 시험 제도는 근대식 관리 임용 시험으로 대체되었다. 1872년에는 전국 학제가 공포되어 초등 교육이 의무화되었고, 이듬해 징병령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성인 남성이 병역을 지는 국민군이 창설되었다. 같은 해 토지세 개혁으로 현물 납부가 화폐 납부로 바뀌면서 국가 재정의 기반이 안정되었다. 사육당은 1870년 육군 장교 양성 기관으로 개편되었다. 옛 이름은 그대로 두었는데, 무사 자제를 길들이던 기관이 국민군의 장교를 길러 내는 기관이 된 것이다. 사육당은 이후 북산 장교단의 핵심 배출 경로가 되어, 20세기에 들어서도 군 내 파벌과 사상의 산실 역할을 했다. 개혁 정부 내부도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정변을 이끈 무관 출신들은 군비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보았고, 신진 문신과 상공업자 출신들은 재정과 산업을 먼저 다져야 한다고 맞섰다. 1874년 청평과의 조공 관계를 무력으로 끊자는 주장이 정부 안에서 제기되었을 때 이 대립은 정점에 이르렀는데, 나카츠카 겐로는 시기상조라며 이를 막았고, 주전론자들은 정부를 떠나 재야 세력이 되었다. 북산은 1876년 청평에 대한 조공을 일방적으로 중단했으나 전쟁은 일으키지 않았다. 청평을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인식은 이때부터 군부의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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