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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과의 책봉 관계 === 1412년 남쪽에서 려우 다이가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청평대제국을 세우자, 하세가와는 곧바로 사절을 보냈다. 1414년 북산 국왕은 청평 황제로부터 왕으로 책봉을 받았다. 농노 출신 가문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던 하세가와에게 책봉은 '국제 질서 속에서 인정받은 군주'라는 외형을 주는 수단이었고, 청평에게는 북방 국경을 전쟁 없이 안정시키는 수단이었다. 초기의 책봉 관계는 상호 이익의 성격이 강했다. 북산은 말과 모피, 인삼, 은을 바쳤고 청평은 비단과 도자기, 서적과 철기를 내려 주었다. 그러나 청평이 전성기를 맞은 17세기에 조공은 해마다 사절을 보내는 정례 의무로 굳어졌고, 청평은 북산의 왕위 계승과 외교 노선에도 개입했다. 북산 귀족 자제들이 띠에우리엔에 유학하고 청평의 율령과 의례가 북산 궁정에 도입되는 동안, 북산 사신이 청평 궁정에서 올리는 절은 종속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훗날 북산 근대 민족주의가 '굴욕의 역사'로 기억하는 대상이 된다. 책봉 관계에 대한 반발도 꾸준히 있었다. 특히 북부 변경의 귀족들은 청평의 간섭을 굴욕으로 여겨 간헐적으로 봉기했으나, 역대 국왕은 책봉이 왕조의 안정을 보장한다고 판단해 이들을 제어했다. 청평의 책봉국은 북산만이 아니었다. 1420년에는 청평 남쪽의 남꽝 왕국, 곧 오늘날의 [[동사랜드]]도 책봉을 받았다. 1876년 북산이 조공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뒤 청평에 남은 책봉국은 남꽝 하나뿐이었고, 1929년 북산은 청평을 정복하면서 이 마지막 책봉 관계까지 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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