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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 == 소나라가 흔들리던 1350년대 중반부터 북산 지역은 둔전군 지휘관 출신의 무장 세력들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시대로 들어갔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1398년 통일까지의 약 40년을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른다. 전국시대 영주들은 소나라에서 물려받은 둔전과 병력을 기반으로 성채를 쌓고, 자기 영지 안에서 세금을 걷고 법을 정했다. 이들은 원이나 소나라 왕실의 권위를 빌리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들을 봉건 귀족의 후계자가 아니라 무력으로 권력을 쥔 전사 군주로 보아 전국영주(戰國領主)라 부른다. 동맹과 배신이 반복되었고, 주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영주가 되는 하극상도 흔했다. 한때 넓은 영역을 지배하던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멸망하는가 하면, 변방의 무명 세력이 전투 한 번으로 강자가 되기도 했다. 혼란은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농민은 전쟁 동원과 수탈에 시달렸지만, 일부는 공을 세워 무사로 올라섰고 군수 물자를 대던 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역설적으로 전국시대는 계층 이동이 활발한 시기이기도 했다. 철제 무기의 대량 보급과 보병 중심의 전술, 성곽 축조 기술이 이 시기에 크게 발전했다. 무사 계급은 이 시기 사회의 중심 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주군에 대한 충성과 용맹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가치관이 무사층에 퍼졌고, 후대에 무사도로 정리되는 규범의 뿌리가 이때 형성되었다. 이주민 집단 사이의 경계도 전쟁을 거치며 흐려졌다. 영주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병력과 인재를 모았고, 열도인·고려인·한인의 후손은 한두 세대 사이에 같은 언어를 쓰는 하나의 집단으로 섞여 갔다. 오늘날 북산 민족의 형성을 이 시기로 보는 견해가 많은 이유다. 통일을 시도한 인물도 여럿 나타났다. 북부의 '''아라카네 슈겐'''은 1360년대에 수십 개의 성을 차지하며 패권에 가장 가까이 갔으나, 1371년 가신의 반란으로 암살되었다. 이어 남부 해안의 '''도하라 겐류'''가 농민과 상인 세력을 끌어들여 1370년대 후반 북산 대부분을 장악했고, 잠시나마 통일에 가까운 질서를 세웠다. 두 사람의 시대를 합쳐 '''아라도하라 시대(荒土原時代)'''라 부르며, 영주들이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한 덕분에 북산 고유의 회화와 연극이 처음 꽃핀 시기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1383년 겐류가 죽자 그의 가신단은 후계를 두고 분열했고, 북산은 다시 전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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