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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드 조선소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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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린포드 조선소 파업'''({{{-1 Linford Shipyard Strike}}})은 1891년 [[루이나]] 북부의 조선 도시 린포드에서 일어난 노동쟁의다. 도급단가 인하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두 달간 조선소를 점거하자, [[찰스 P. 위트모어]] 정부가 해군확장 계획의 함정 건조를 이유로 '''해병대를 투입해 무력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11명이 사망했다. 루이나 헌정사에서 정부가 자국 노동자에게 정규군을 투입해 발포한 첫 사례이며, 제1공화국 최대의 국내 유혈 사건으로 기록된다. 진압 당일의 현장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면서 여론이 급격히 돌아섰고, 위트모어는 이듬해 선거에서 패배해 '''루이나 최초의 재선 실패 대통령'''이 되었다. 사건에는 두 겹의 이해충돌이 있었다. 진압 대상이 된 조선소는 위트모어 본인이 1859년에 세워 18년간 경영한 회사였고, 그의 가문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었다. 노동자 상당수는 그의 옛 고용인이었다. 이 사건은 루이나 노동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후임 [[앨버트 스트래튼]] 정권의 1894년 공장법, 나아가 [[헤이슬러|헤이슬러]] 정권의 1935년 노동관계법에 이르는 흐름이 모두 여기서 시작된다. > 우리가 만든 배로 우리를 겨눈다. > ── 일라이어스 M. 브래넌, 1891년 5월 5일 파업위원회 마지막 연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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