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루이나-고랜드 전쟁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최후통첩과 탈레반의 거부 === 1월 22일 [[북랜드해협조약기구(NLTO)]]는 창설 이후 처음으로 헌장 제5조의 집단방위 조항을 발동했다. 1월 25일 루이나 의회는 1.19 사건의 계획과 실행, 비호에 관여한 모든 국가와 조직에 대해 대통령에게 무력 사용 권한을 주는 결의를 채택했다. 상원에서는 반대 1표, 하원에서는 반대 3표가 나왔다. 1월 26일 발렌타인 정부는 탈레반에 다섯 가지 요구를 담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나쉬디와 알자미아 지도부의 인도, 억류 중인 외국인의 석방, 고랜드 안의 모든 훈련소 폐쇄, 훈련소 사찰을 위한 루이나 조사단의 입국 허용, 알자미아 조직원 전원의 인도였다. 루이나는 이 요구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아바나의 이슬람 성직자 회의는 나쉬디에게 자진 출국을 권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물라 우마르는 이를 거부했다. 손님을 적에게 넘기는 것은 파슈툰 부족의 명예를 버리는 일이며, 한 번 굴복하면 루이나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탈레반은 나쉬디가 1.19 사건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요구했고, 루이나가 공습을 하지 않는다면 나쉬디를 제3국의 이슬람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루이나는 이를 시간 끌기로 보고 거부했다. 2월 3일 루이나 해군은 고랜드 동부 호스트주와 남부 칸다하르 인근의 알자미아 훈련소 네 곳에 순항미사일 79발을 쏘았다. 그러나 훈련소는 대부분 비어 있었고, 공격은 1998년처럼 상징적인 보복에 그쳤다. 이 공격 이후 루이나 정부 안에서는 지상군 없이는 나쉬디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굳어졌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