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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군 하다드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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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고랜드 === 사건은 6월 초 지역 신문 보도로 알려졌다. 6월 18일 재판권 포기가 발표되면서 항의가 전국으로 번졌다. 7월 11일 존 하다드 알샤비로에서 1만 2,000여 명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해산했다. 이날 연행자는 240여 명이었다. 7월과 8월 사이 나크시에 로스탐과 시디벨, 반다르아베스에서 열린 관련 집회는 60여 건, 누적 참가 인원은 17만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정부의 대응은 일관되게 통제였다. 7월 15일 내무부가 관련 집회의 사전 허가를 일괄 불허했고, 8월에는 사건을 1면에 실은 지역 신문 2종이 등록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 통제가 사건의 성격을 바꾸었다. 항의는 처음에는 가해자 처벌과 재판권을 요구했으나, 가을을 지나면서 집회·언론 규제 자체를 겨냥하는 쪽으로 옮겨 갔다. 또한 남부에서 시작된 항의가 북부로 번지면서, 아랍어권과 한국어권이 같은 사안을 두고 함께 움직인 독립 이후 첫 사례가 되었다. 유고랜드 현대사 서술에서 1987년 여름은 시민사회 형성의 기점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진다. 다만 이 시위가 체제를 바꾸지는 못했다. 집회·시위 사전 허가제와 신문 등록제는 이후로도 유지되었고, 유고랜드의 정치 체제는 현재까지 비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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