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루이나 계승전쟁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명분 ==== 왕당파의 주장은 '''혈통은 표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 왕위는 신이 정한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 1689년 [[왕위협약]]은 [[제이머스 2세]]의 계승권을 박탈한 바 없으므로 그 후손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 * 의회가 왕을 고르기 시작하는 순간 왕정은 이미 끝난 것이다 세 번째 명제가 이 진영의 핵심이었고, 동시에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그들이 옳았기 때문이다. 2년 뒤 의회는 정확히 그 권한을 행사해 왕위를 없앴다. 한편 왕당파 내부에는 처음부터 균열이 있었다. 상당수 지지자에게 중요한 것은 뮈롱 개인이 아니라 '''벨포르의 지배에 대한 반대'''였다. 남부 고지의 농민과 소지주들에게 이 전쟁은 계승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자치를 둘러싼 싸움이었고, 실제로 왕당파 소책자들은 남부 고지에서 배포될 때 계승 논쟁보다 벨포르의 세금과 간섭을 강조하는 판본으로 바뀌었다. 뮈롱 자신이 이 명분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는 점도 지적된다. 혈통이 왕을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인물이 루이나어를 못하는 대륙의 목수였기 때문이다. 왕당파 지식인들은 이 사실을 오히려 논거로 삼았다. 자질 때문이 아니라 오직 혈통 때문에 왕인 사람이야말로 왕권이 사람의 선택이 아님을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내부 결속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중립 지대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