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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계승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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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의 거부와 「왕위 계승에 관한 결의」 === 1883년 1월 8일 의회가 재개되자 왕비의 서한이 곧바로 안건에 올랐다. 논의는 3주간 이어졌고, 반대 논거는 세 갈래로 정리되었다. '''첫째, 헌정 논거.''' 1689년 왕위협약이 계승권을 명시적으로 박탈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 협약 이후 제정된 [[개신교 계승법]]이 계승 순위를 새로 확정했으므로 구 계열의 청구권은 이미 대체되었다는 주장이다. 뮈롱을 세우는 것은 협약 이후 193년간 쌓인 헌정 질서 전체를 무효화하는 일이라는 논리였다. '''둘째, 추대 논거.''' 국왕을 세우는 권한은 1372년 [[벨포르 추대회의]] 이래 왕비 개인이 아니라 대표기구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 논거는 공화파 의원들이 아니라 왕당파에 가까운 온건 보수 의원들이 주도해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왕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으나, 2년 뒤 이 논거는 왕정을 폐지하는 근거로 그대로 쓰이게 된다. '''셋째, 주권 논거.''' 루이나어를 하지 못하고 루이나에 거주한 적도 없는 인물을 대륙 출신 왕비가 데려와 앉히고 스스로 섭정을 맡겠다는 것은 사실상 외국의 섭정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거가 여론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1883년 2월 2일''', 의회는 「'''왕위 계승에 관한 결의'''」를 재석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결의의 골자는 네 항목이었다. * '''제1항''' — 가스파르 뮈롱 및 그 계열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 '''제2항''' — 왕위 계승자의 확정은 오로지 의회의 입법으로만 이루어진다 * '''제3항''' — 왕태후 아델하이트는 계승 순위에 있지 아니하며, 섭정직을 주장할 근거를 갖지 아니한다 * '''제4항''' — 계승자가 확정될 때까지 국정은 내각이 대행하며, 어떠한 개인도 국왕의 대권을 행사할 수 없다 제4항이 이후 모든 분쟁의 초점이 되었다. 왕비 측은 이 조항이 국왕 대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고 보아 헌정 파괴로 규정했고, 의회는 왕이 없는 동안 대권이 정지된다는 당연한 확인일 뿐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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