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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해협 우주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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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달에 가지 않았는가 === 랜드해협 우주경쟁을 다룰 때 자주 제기되는 질문은, 기술적 우위를 자랑하던 두 나라가 왜 끝내 달에 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제시된다. 첫째, 군사적 가치의 문제다. 1969년 펠프스 해군참모총장의 "달은 해협을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증언은 달 착륙이 루이나의 안보에 아무것도 더해 주지 못한다는 군부의 인식을 요약한 것으로, 사비에트의 달 관측 기지 구상이 기각된 이유도 같았다. 둘째, 위신의 문제다. 달은 이미 미국과 소련의 경쟁 무대였고, 세 번째나 네 번째로 달에 가는 것은 막대한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위신이 크지 않았다. 앞서 본 것처럼 랜드해협의 경쟁은 애초에 선전을 동기로 삼지 않았다. 셋째, 예산 구조의 문제다. 루이나의 우주예산에서 민간 기관인 RASA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고, 달 착륙과 같은 대형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은 대부분 국방부와 국가정찰국에 있었다. 1966년 루이나 정부가 달 착륙 대신 CROW'S NEST를 택할 때 작성된 검토 문서에는 "달 착륙 1회의 비용으로 궤도 관측소를 3년간 운용할 수 있다"는 문장이 남아 있다. 다만 이것이 전적으로 합리적 선택의 결과였는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일부 연구자는 1964~1966년 루이나 내부에서 달 착륙 계획이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되었고, 해군과 공군이 모두 달 착륙을 상대 군의 사업으로 여겨 지지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즉 루이나가 달에 가지 않은 것은 달의 가치를 따진 결과라기보다 누구의 사업인지를 정하지 못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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