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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해협 우주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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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궤도의 휴전 (1987~2002) == 센츄리움 궤도협정 발효 이후 약 15년간 랜드해협의 궤도는 비교적 안정되었다. 1990년 메치 해체가 완료되었고, 1991년에는 양국이 각자 추적하던 궤도 물체 목록을 정기적으로 교환하는 부속 합의가 체결되었다. 이는 상대의 위성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추적망이 처음으로 충돌 회피라는 공동의 목적에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이 시기에는 과거의 기밀도 일부 공개되었다. 사비에트는 1989년 사르다 발사장 참사를, 1991년 크레포스트 2호의 궤도 사격 시험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루이나는 1992년 국가정찰국의 존재를 공식 인정했고, 1998년에는 KESTREL 사진 약 71만 장을 기밀 해제했다. 이 사진들은 이후 해협 연안의 토지 이용 변화와 산림 변화를 연구하는 환경사 연구의 1차 자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군사 우주예산이 줄어든 자리는 과학과 민간이 채웠다. 1990년대는 RASA의 행성 탐사와 지구 관측 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으며, 1996년 루이나는 해군의 LODESTAR 신호를 민간에 전면 개방해 선박·항공기·차량 항법에 쓸 수 있게 했다. 루이나의 민간 발사 사업과 상업 위성 영상 사업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그러나 휴전은 무장 해제가 아니었다. 협정은 상대의 눈을 찌르는 행위와 파편을 남기는 시험을 금지했을 뿐 그 밖의 준비는 막지 않았고, 양국은 협정의 문턱 아래에서 지상 레이저, 전파 방해 장비, 궤도 기동이 가능한 소형 위성 같은 비파괴형 능력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1990년대 후반 루이나 국방부의 한 내부 보고서는 이 상황을 "협정은 칼을 뽑는 것을 금지했지 칼을 가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다"고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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