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대서양-랜드해 전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독일 해군의 재건과 Z계획 (1935~1939) ===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해군에 배수량 1만 톤 이하의 구식 전함 6척과 경순양함 6척만을 허용했고,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보유는 전면 금지했다. 한때 세계 2위를 자랑하던 독일 해군은 조약 체제 아래서 사실상 발트해 연안 경비대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스캐퍼플로에서 자침한 대양함대의 기억은 해군 내부에 굴욕과 설욕 의지로 남아 있었다. 재건의 첫 신호탄은 조약의 틀 안에서 나왔다. 1만 톤 제한을 지키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를 초과하는 배수량에 28cm 주포와 디젤 기관을 얹은 장갑함, 이른바 '포켓 전함'이 [[1930년대]] 초 차례로 취역한 것이다. 순양함을 압도하는 화력과 전함을 뿌리치는 속력, 그리고 디젤 기관이 보장하는 긴 항속거리라는 조합은 함대결전이 아니라 대양에서의 통상파괴를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열강 해군이 이 함종의 등장에 대응해 신형 순양전함 건조에 나섰을 정도로, 포켓 전함은 등장 자체만으로 건함 경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1935년 '''영독 해군 협정'''은 재무장에 합법의 외피를 입혀주었다. 영국 해군력의 35% 수준까지 수상함 보유를 인정받은 독일은 기다렸다는 듯 순양전함 2척을 기공했고, 뒤이어 유럽 최대급의 신형 전함 2척의 건조에 착수했다. 서류상 협정의 톤수 제한을 준수한다고 신고된 이 전함들의 실제 배수량이 신고치를 크게 웃돌았다는 사실은 개전 후에야 드러났다. 같은 시기 항공모함 1척도 기공되었으나, 해군과 공군 사이의 관할권 다툼 속에 공정은 지지부진했고 이 배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문제는 이 함대를 무엇에 쓸 것인가였다. 해군 내부에서는 [[에리히 레더]]를 중심으로 한 대수상함파와, 잠수함 집중 건조를 주장하는 유보트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레더는 잠수함이 보조 전력에 불과하며 대양에서 적의 해상 교통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균형 잡힌 수상함대뿐이라고 보았고, 이 노선의 결정판이 [[1939년]] 초 총통의 재가를 받은 Z계획이었다. 전함 10척, 항공모함 4척, 신형 장갑함 15척, 순양함 수십 척을 [[1948년]]까지 갖춘다는 이 구상은 완성될 경우 영국 해군과의 정면 대결까지 상정한 대해군 건설 계획이었으며, 이를 위해 육군·공군에 앞서는 자원 배분 우선권까지 부여받았다. 그러나 Z계획의 전제는 '전쟁은 빨라야 1944년 이후'라는 것이었다. [[1939년]] 9월 전쟁이 발발하자 계획은 착공 단계의 함선 몇 척을 남기고 전면 중단되었고, 독일 해군은 전함 2척과 순양전함 2척, 포켓 전함 3척이 전부인 미완성 함대로 세계 최대의 해군 연합과 마주하게 되었다. 개전 소식을 들은 레더가 "수상함대는 너무나 미약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명예롭게 싸우다 죽는 법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비관적인 기록을 남겼을 정도였다. 역설적으로 이 절대적 열세가 독일 해군의 전략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함대결전으로는 승산이 없는 이상, 남은 길은 우세한 적 함대를 회피하며 적의 가장 약한 고리, 즉 해상 교통로를 때리는 것뿐이었다. 포켓 전함부터 최신예 전함까지, 독일 수상함대의 모든 함정은 이제 통상파괴함으로 운용될 것이었고, 그 사냥터로 지목된 것이 바로 [[루이나]]의 생명선이 지나는 대서양-랜드 내해 항로였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