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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보호법(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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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 차단 === 1977년 [[2차 랜드 전쟁]]이 끝나자 청평에서 배를 타고 탈출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청평은 고시 국가였으므로, 루이나 해군은 공해에서 청평의 난민선을 만나면 구조해 루이나 항구로 데려왔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이렇게 들어온 청평 난민은 약 9만 4천 명이었다. 1984년 유고랜드가 독립한 뒤 정치적 혼란과 탄압이 이어지자, 이듬해부터 유고랜드와 북산에서도 난민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베인브리지]] 정부는 1985년 「해상 이주 통제령」을 내려, 해군이 공해에서 이 배들을 정선하고 선상에서 간단한 면접을 한 뒤 출발지로 돌려보내게 했다. 난민보호법은 루이나 영역 안에서 신청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정선된 약 3만 1천 명 가운데 루이나 입항이 허가된 사람은 600여 명으로 2%에 못 미쳤다. 같은 바다에서 청평의 배는 항구로, 유고랜드와 북산의 배는 출발지로 향한 것이다. 1988년 3월 유고랜드 난민선 해림호가 정선된 뒤 돌려보내지던 중 폭풍을 만나 침몰했다. 타고 있던 212명 가운데 147명이 숨졌다. 해군은 예인을 중단하고 현장을 떠났다는 비판을 받았고, 해림호 사건은 해상 차단에 반대하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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