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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노스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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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나는 아버지를 고발하러 온 것이 아니다. 아버지 없이 살아 보려고 왔다. > ---- > 1967년 4월 27일, 벨포르 공항 기자회견에서 [[사비에트]]의 초대 서기장 [[이오시프 노스탈린]]의 딸이자 번역가, 작가. 아버지의 망명지 모스크바에서 자라 1949년 붉은 혁명이 끝난 뒤에야 처음 '조국'에 들어왔고, 1953년 3월 아버지의 마지막 이틀을 곁에서 지켜본 몇 안 되는 가족이었다. 1966년 세상을 떠난 유고슬라비아인 동반자의 유골을 고향에 묻는다는 명분으로 출국 허가를 받은 뒤, 1967년 3월 [[베오그라드]]의 루이나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했다. 냉전 한가운데에서 적국 건국자의 딸이 망명해 왔다는 사실은 루이나 정부에 더없이 좋은 선전 재료였고, 1969년 펴낸 회고록 《아버지의 방》은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며 노스탈린의 사인을 둘러싼 독살설의 주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2차 랜드 전쟁]]과 [[검은 10년]]을 겪으며 그녀는 루이나 정부와도 등을 돌렸다. 사비에트의 대정리에 대한 침묵과 루이나의 [[띠에우리엔 대학살]]에 대한 침묵을 나란히 놓은 1977년 에세이집 《두 개의 침묵》 이후, 루이나 국방부 특무처는 그녀를 [[스틸워터 계획]]의 감시 대상으로 등재했다. 자유를 찾아 망명한 독재자의 딸이 망명한 나라에서도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의 조사로 드러났다. 사비에트는 그녀의 망명에 끝까지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국적을 박탈하지도, 재판에 넘기지도 않았으며, 대신 공식 기록과 사진에서 그녀를 조용히 지웠다. 1990년대 재편기에 두 차례 사비에트를 방문했지만 끝내 돌아가 살지는 않았고, 2011년 벨포르에서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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