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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비에트]] == [[파일:사비에트교복.jpg|width=100%]] 어떤 사비에트 학교의 교복. 잘 다려진 군청색 셔츠와 각 잡힌 바지, 그리고 가슴에 달린 사회주의 소년단 배지 덕분인지, 외국 사람들은 "진지하고 근면한 나라의 느낌"이 난다며 인상적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이 사진에 대한 인상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해외인들은 사비에트 교복을 예쁘고 단정하다고 느낀다. 사진 속 교복은 제정사랜드시기에 유래한 것으로, 여자 교복은 에이프런 드레스, 남자 교복은 군복형 셔츠와 바지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다만 현재는 이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고,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행사용 예복으로 이 스타일이 사용된다. 초창기(1930년대 중반)에는 군사주의와 집단주의의 상징물로 교복이 재도입되었다. 특히 여자 교복은 19세기 후반 유럽 메이드복과 유사한 흑색 드레스 위에 흰색 앞치마(에이프런)를 덧입는 방식이었으며, 머리에는 리본이나 캡을 착용하는 등 다소 연극 의상 같은 고전미가 있었다. 이런 옷차림은 평소에는 검은 앞치마를 착용하다가 졸업식이나 국경일 행사 때만 흰 앞치마로 교체하는 전통이 있었고, 여전히 일부 졸업식 사진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식은 너무나 불편하고 비실용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거의 준군복 수준의 규격화된 셔츠와 바지, 심지어 짧은 이발이 의무화되었으며, 복장의 구겨짐이나 단추 미착용은 체벌 사유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교복 규율은 유르첸코 시기(1950~60년대)에 다소 완화되었는데, 지나친 권위주의에 대한 반성 기조 속에서 교복 디자인 역시 간결하고 실용적인 스타일로 개편되었고, 머리 규제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회주의 시민으로서의 단정함과 균질성은 여전히 핵심 덕목으로 남아 있었다. 쿠르딘 시기인 1973년에는 재질 문제와 대중 불만을 반영해 폴리에스터·면 혼방 교복으로 대체되었으며, 고등학교 전용 교복이 따로 도입되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고학년일수록 자유복 허용 범위가 넓어지는 역설적인 구조가 등장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비에트식 교육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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