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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직후의 혼란과 바티시 군사정권 ==== 독립의 환호는 채 가시기도 전에 고랜드 내부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느슨하게 연대했던 부족 세력들과 도시 지식인 계층, 그리고 루이나의 지원을 받던 친루 온건파 사이에 권력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다. 독립 직후 수립된 민간 과도정부는 이 균열을 봉합하지 못한 채 내부 분열로 무기력했고, 행정 능력의 부재는 극도의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다. 1961년, 이 혼란의 틈을 비집고 파루크 알-바티시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중사의 반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바티시는 사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과도정부 청사를 점령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독립한 지 불과 2년 만에 고랜드는 다시 독재의 그늘에 놓인 것이다. 바티시 정권은 형식적으로는 '혁명평의회'를 구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 독재 체제였다. 그는 루이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국내 반대파를 철저히 탄압했으며, 아바나의 카지노와 사탕수수 농장을 루이나 기업들에 개방하여 개인적인 축재를 일삼았다. 독립전쟁 당시 총을 들었던 고랜드 민중의 기대는 완전히 배신당했다. 바티시 정권에 대한 저항은 도시 지식인층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먼저 불붙었다. 비밀 독서 모임과 지하 출판물을 통해 유고랜드 혁명 사상과 공산주의 이념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마베라 식민지 시절부터 독립운동의 이론가로 활동했던 이드리스 알-파루키가 옥중에서 집필한 글들이 비밀리에 필사·배포되며 청년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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