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고랜드/역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공산 혁명 이후 ==== 성베르트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사비에트와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사비에트와 소련은 나름대로 고랜드를 이용해 루이나를 압박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사비에트는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고랜드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루이나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고랜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페어팩스 정부는 고랜드를 해상봉쇄하고, 고랜드로 향하던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충돌 직전까지 치닫자 전 세계는 고랜드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사비에트가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가라앉았다. [[팔레르모 합의]](Accordo di Palermo)에 따라 사비에트는 루이나가 빌베른에서 탄도미사일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고랜드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성베르트는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크게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달래기 위해 군사·경제 지원을 계속하고 부대를 주둔시켰다. 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 부대는 사비에트군 내에서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부했으며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고랜드 혁명에 동참했던 [[타리크 이븐 게바라]]는 고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99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사살된다. 타리크의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아바나 거리에는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와 애도했다. 성베르트는 직접 라디오 연설을 통해 "타리크는 죽지 않았다. 그는 총을 든 모든 자유인의 심장 속에 살아 있다"고 선언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