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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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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토요일 === >회의를 끝내고 대통령실을 나오면서 노을이 드리운 가을 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음 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다 죽을 것'''이라는 예감에 공포에 휩싸였다. >---- >로버트 맥도날드 당시 루이나 국방장관, PBS War and Peace in the Nuclear Age. 10월 27일, 로버트 페어팩스와 아나폴리 도브리닌이 만나 고랜드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것과 플로렌시아와 빌베른의 미사일 철수를 고랜드에서의 미사일 철수와 교환하자고 합의했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이 거래가 공개되면 루이나 국내와 NLTO의 동요와 분열이 있을 것이므로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비에트는 이를 수용 가능한 주장으로 보았고 상황이 정리되는 듯 하였지만[* 이때 이상한 기류를 직감한 빌베른 정부는 주피터 미사일 철수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반면 플로렌시아 정부 측은 자국 본토에 배치된 주피터 미사일을 협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았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었다. 10월 26일에서 27일을 거치는 새벽 성베르트는 아바나의 사비에트 대사관에 가서 "앞으로 24시간, 늦어도 72시간 내로 루이나의 공습이 임박했다"고 인터루쇼프에게 알렸다. 그리고 루이나가 침공하는 즉시 사비에트가 루이나를 향해서 핵공격을 감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성베르트는는 이것이 제 3차 랜드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으며 루이나 정찰기를 격추시킬 것을 명령했다. 즉 성베르트는 위기를 통제하고자 했던 인터루쇼프와 생각이 달랐다. 나중에 성베르트는 자신이 이러한 요청을 했다는 것을 부인했으나 성베르트의 면피에 불과하며 2022년 5월에 소련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사비에트의 인터루쇼프는 성베르트의 요청에 "이 새끼는 광기에 눈이 먼 것인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인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여기에 루이나 군부가 민간 도시들이 아니라 군사 시설에만 핵공격을 퍼부어서 전쟁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핵전쟁 교리를 들고 오자 인터루쇼프는 자신의 핵 벼랑 끝 전술이 더는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루이나가 핵전쟁을 군사 시설만 타격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었다. 인터루쇼프는 간부회에서 루이나의 목표가 사람들이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핵전쟁이란 것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인터루쇼프는 플리예프의 명령으로 핵탄두가 무기고에서 나와 트럭에 실리자 전략 핵무기는 물론, 긴급 전보로 비행기에 장착된 핵무기나 전술무기도 모두 금지한다는 방침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인터그라드의 통신은 원활하지 않았고 현장의 실전 심리와 고랜드군 동지들에 대한 연대감은 부풀어올라 있었다. 성베르트는 사비에트측 지휘관에게 고랜드 영공을 침범하는 루이나군기에 대한 방공태세, 즉 '''요격과 격추'''를 요청했고 사비에트의 현장 지휘관은 이를 승인했다.[*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성베르트는 대표적인 강경파였다. 루사를 막론하고 주로 정치인들이 온건파, 군부가 강경파에 속하였는데 성베르트는 스스로 게릴라를 이끌고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라 그런지, 그리고 루이나의 침공 위협에 계속 시달려서 그런지 루이나를 공격하자는 굉장한 강경론을 내세웠고 인터루쇼프를 뒷목 잡게 만들었다.] 루이나에는 인터루쇼프의 두 번째, 그리고 공개적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빌베른의 루이나 미사일 기지도 철수할 것." 국가안보회의 참석자들은 빌베른의 주피터 미사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그것이 '''공개적 메시지인 이상''' 인터루쇼프의 제안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인 거래는 NLTO 동맹국들의 걷잡을 수 없는 반발을 초래할 것이며 루이나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굴복으로 비쳐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EXCOMM 구성원들은 인터루쇼프가 비밀 전문을 보내면 될 것을 공연히 공개 메시지로 보내서 일을 망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중에는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 빌베른에서 철수할 걸'이라고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바꾼다. 한편 26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미리 예정되었던 아틀라스 로켓 ICBM의 시험발사가 이루어졌다. 데프콘 3이 발령된 상황에서 주변 ICBM에는 핵탄두가 장착되고 있었다. 랜드해로 발사될 예정이었던 이 미사일에는 핵탄두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사비에트가 이 발사를 포착하여 핵공격으로 간주했다면 핵전쟁이었다.[* 사비에트가 이 발사를 감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고랜드의 미사일 동향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던 페어팩스를 비롯한 루이나 지도부는 자국 내에서 고랜드와 사비에트 방향으로 ICBM이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플로렌시아에서는 대통령이 내각 회의 끝에 탄도미사일 및 핵폭격기 부대에 15분 내 즉시 출격대기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플로렌시아도 핵전쟁 태세에 돌입하게 되었다. 고랜드 정부는 성베르트의 지휘하에 혁명지도부가 각기 고랜드 내 다른 지역을 맡아 방위전을 지휘하기로 하고 피델 성베르트와 체 게바라가 고랜드 내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이는 유사시 정부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동시에 고랜드 전국에 민방위체계 가동을 선포하고 공습에 대한 지침을 전파했다. 마침내 27일 오후 루이나의 U-2 정찰기가 사비에트 브랑겔 섬의 영공을 침범해 루이나측의 전투기들이 '''비통상탄두 미사일'''[* 일반 폭약 탄두가 아닌 탄두, 즉 '''핵무기'''를 뜻한다.]을 탑재하고 날아올라 사비에트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다음날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비에트 영공을 침범한 U-2가 핵공격으로 오인되었을 경우 자칫하면 핵전쟁으로 번질 뻔했다고 서술했다. 특히 당시 루이나의 요격기들은 '''250t 출력의 GAR-11(이후 AIM-26 팰콘으로 개명됨) 핵공대공 미사일과 1.5kt 출력의 AIR-2 지니 핵로켓'''을 탑재하고 있었다.] 다행히 U-2가 사비에트 영공을 벗어나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U-2기는 고의적으로 사비에트 영공을 침범해 정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북극권 정찰 및 대기권 내 핵실험 시료 채취를 위한 비행 도중 항로착각으로 사비에트 영공으로 들어간 거였다. 사비에트 영공 정찰은 1980년 5월 개리 파워즈의 U-2기 격추 이후로 위험성이 인정되어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 직후 고랜드 영공의 다른 U-2 정찰기가 사비에트군의 SA-4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루이나 공군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Rudolf Anderson) 소령이 사망했고, 같은 날 고랜드 상공을 정찰 비행하던 미 해군 RF-8 정찰기는 고랜드군의 대공포 사격을 받았다. 이때 양측 수뇌부는 이 상황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이나의 U-2 정찰비행은 위 ICBM 시험발사와 같이 위기 발생 직전에 잡은 일정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뒤늦게 이를 안 맥도날드 국방장관[* 로버트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이 장면에서 대표적인 온건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국방장관이 온건파라는 사실은 페어팩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은 노발대발하며 모든 비행 일정들을 취소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페어팩스 대통령은 "어딜 가나 말귀를 못 알아먹는 개새끼가 꼭 있지 (There's always some son of a bitch who doesn't get the word)"라고 냉소적으로 농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단히 말해 '''넌 씨발 눈치가 없냐'''.] 양측 전투기가 '''수칙에 따라'''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이륙하여 대치했다는 사실은 양측 수뇌부 모두 상황 종식 이후에나 알았다. 또 다른 U-2 격추는 인터루쇼프가 아닌 사비에트군 일선 지휘관의 결정이었으며 인터그라드 역시 상황이 끝난 이후에나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막장의 절정.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최고지도부들이 최일선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랜드 상공에서 U-2가 격추된 순간 루이나 수뇌부는 당장 고랜드를 침공해야 한다면서 격노했으나 '24시간 동안은 고랜드를 침공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용케 참았다. 같은 날 남랜드해에서는 루이나군이 훈련용 폭뢰를 통해 사비에트 해군 잠수함의 강제 부상을 시도했고 이것이 적중해 사비에트의 폭스트로트급 잠수함 B-59함의 선체 근처에서 폭뢰가 폭발했다. 당연히 B-59는 루이나군의 '시도'를 폭뢰 '공격'으로 오인했고 함선의 손상이 심한데도 루이나군의 폭뢰 투하로 인해 부상하지 못하다보니 산소 고갈 상태에 빠졌다. 약 4시간 동안 함선 내부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해 승조원들이 쓰러지고 있었고 인터그라드와의 통신도 불가능했다. 이 판국에 다시 함선 근처에서 폭뢰가 터지자, B-59 함장 발렌틴 사비츠키(Валентин Савицкий) 대령은 이를 전쟁 발발 상황으로 간주, 정치장교 이반 마슬렌니코프(Иван Масленников) 대령의 동의를 받아 '''탑재한 핵어뢰를 발사하려고 했다.'''[* 당시 B-59함은 '''최대 10kt의 위력을 지닌 RDS-9 핵탄두를 탑재한 T-5 어뢰들을 탑재 중이었다.'''] 다행히 부장이자 K-19 함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반대하여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장이 발사에 반대한 후 B-59는 루이나군 항공기에 도발을 중단하란 교신을 보냈고 루이나군이 이를 받아들여 철수하자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전력도, 산소도 고갈되고 에어컨 장치까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루이나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아르히포프의 반대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이날 저녁을 기억했다.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실을 나설 때, 아름다운 가을 저녁이었다. '''그러나 곧 다음주 토요일 밤에는 아마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편 공포에 질린 것은 루이나 수뇌부뿐이 아니었다. 사비에트 역시 수뇌부가 공포에 질렸다. 인터그라드의 중앙당 관리들은 가족들을 시골로 대피시키느라 소동을 벌였고 난데없이 인터그라드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을 본 지방 관리들도 사태의 추이를 알게 되자 경악하였다. 사비에트 곳곳에서 미친 인터루쇼프가 엄청난 혼란 속으로 자신들을 몰고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시 당중앙위원회 연락부 부원으로, 연락부장 유리 안드로포프를 보좌하던 사비에트 정치학자 표도르 부를라츠키(Фёдор Бурлацкий)는 10월 27일 당중앙위원회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차를 기다리던 중 동료인 알렉세이 벨랴코프(Алексей Беляков)를 만났다. 벨랴코프가 그에게 가족들을 시골로 보냈냐고 묻자 부를라츠키는 도대체 왜 가족들을 시골로 보내야 하는지 되물었고 벨랴코프는 조만간 인터그라드가 핵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10월 28일 ''''사비에트가 선제 핵공격을 했다!''''는 경보가 북랜드방공사령부(NOLAD)에 울려 퍼졌다. 핵미사일이 온다는 경고가 울린 것이다. 워낙 급작스런 일이라 다들 한방 맞았구나 싶어 대통령에게 보복 핵공격을 건의하려는데 이미 핵폭발로 사라졌어야 할 도시에서 "이상 없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조사했더니 '''핵공격을 대비한 자체 훈련 프로그램으로 인한 오보였다.''' 사태 파악이 늦었으면 어처구니없는 핵전쟁이 터질 뻔했다.[* 의외로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핵전쟁이 터질 뻔한 적은 엄청나게 많다. 긴박한 상황일 때 잘못된 정보나 누군가의 거짓말에 사실을 전혀 파악해보지도 않고 곧이곧대로 믿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약 4개월마다 핵전쟁이 터질 뻔했다고 전해지는데 ''' 높으신 분들만 알고 국가 차원에서 은폐해서 민간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건까지 있었다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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