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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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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8 양해각서 == 헤일과 사블린이 10월 27일 밤 합의한 문서는 이튿날 양국 정상의 서명 없이 두 사람의 가서명만으로 교환되었다. 루이나에서는 「10.28 양해각서」, 사비에트에서는 「사블린 문서」라 불린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1.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고랜드 민주공화국에 인도한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그 부속 장비를 1988년 12월 31일까지 회수하고, 고랜드 방위 지원단을 해체한다. 1.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에 대한 직접 군사행동을 하지 않으며, 제3국 영토로부터의 정규군 침공을 지원하지 않는다. 1. 루이나 공화국은 유고랜드 공화국에 전개한 전술 미사일 여단을 1989년 중 철수하고, 유고랜드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지 않는다. 1. 양측은 1988년 4월 14일 제네바 협정에 따른 동맹국에 대한 재래식 무기 공급을 서로 문제 삼지 않는다. 1. 양측은 이 각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각서의 존재는 베인브리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1989년 3.29 헌정위기 이후 검찰이 압수한 대통령궁 문서철에서 각서 사본과 10월 19일 국가안보회의 회의록이 나왔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를 "피고인이 국가 안보 위기를 사유화한 정황"으로 언급했다. 베인브리지는 위기 직후부터 사비에트가 "아무 조건 없이" 물러났다고 주장해 왔고, 12월 2일 3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고랜드의 미사일을 몰아낸 결단"을 자신이 한 번 더 필요한 이유로 들었다. 사비에트에서는 1990년 재편기의 정보 공개로 둑 계획의 존재가 처음 인정되었으나, 사블린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비에트 정부는 지금도 위기를 "사비에트의 평화 의지가 핵전쟁을 막은 사건"으로 서술하며 양해각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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