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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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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슬리스크의 분열 === 연설은 크라슬리스크를 둘로 갈랐다. 바라노프와 총참모부는 루이나의 검역을 '공해상의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화물선을 잠수함으로 호위해 검역선을 돌파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루이나가 국내 정치 때문에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보았다. 반면 외무상 게오르기 A. 체르카소프는 궤도협정의 이행 정지가 곧 제1차 우주경쟁의 재개를 뜻한다며 타협을 요구했다. 카멘스키의 처지는 곤란했다. 둑 계획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물러서면 군부는 철군과 궤도협정까지 싸잡아 굴욕이라 부를 것이었다. 10월 23일 사비에트 외무성은 성명을 내어 미사일이 "고랜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인도된 방어용 무기"이며 제네바 협정 어디에도 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고 반박했다. 같은 날 카멘스키는 벨포르-크라슬리스크 직통선으로 베인브리지에게 첫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공개 성명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 우리 두 사람 모두 고랜드를 위해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지부터 함께 따져 봅시다. >---- > 1988년 10월 23일, 카멘스키가 직통선으로 보낸 첫 메시지 고랜드의 나지불라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미사일과 방위 지원단은 사비에트가 떠난 뒤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유일한 보증이었다. 나지불라는 사비에트 대사를 통해 "미사일을 거두는 것은 우리를 거두는 것과 같다"는 전언을 크라슬리스크에 보냈다. 사비에트의 후원국인 소련은 공식적으로 사비에트를 지지했으나, 비공식 경로로는 조기 수습을 거듭 요구했다. 랜드해협의 핵 위기가 소련 자신의 대외 관계까지 흔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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