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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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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정의 전복과 조차지의 등장 ==== 콘스탄티노폴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세기 후반 빌베른 공화정이 전복되면서부터였다. 본국이 정변과 그 뒤의 혼란에 휩싸이자 해협 건너 멀리 떨어진 이 도시를 돌볼 여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총독부는 본국의 송금이 끊겨 병력과 관리들의 봉급조차 제때 주지 못했고, 해협의 치안은 급격히 무너졌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외국 열강이었다. 열강은 혼란기의 폭동으로 자국 상인과 선원이 입은 피해의 배상, 빌베른 정부에 대한 차관, 해협 항로의 보호 등을 명분으로 콘스탄티노폴의 항만 구역을 하나둘 떼어 갔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루이나]]였다. 루이나는 수심이 가장 깊어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남항구 일대를 조차했고, 곧이어 다른 나라들이 최혜국 대우 조항을 내세워 같은 권리를 요구했다. 한 나라에 조차지를 내주면 다음 나라에도 내줄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에, 19세기 말에 이르자 루이나와 [[플로렌시아]], [[체르드]]를 비롯한 아홉 개 나라가 콘스탄티노폴에 조차지를 두게 되었다. 조차지는 시가지 면적의 약 40%, 부두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 같은 무렵 빌베른은 통치 효율을 이유로 현 [[델라웨어]] 지역을 포기했다. 이로써 본국과 콘스탄티노폴을 잇던 육로가 끊겼고, 바닷길로만 이어진 도시는 사실상 본국에서 떨어져 나간 외딴섬이 되었다. 이후 도시에 남은 빌베른의 흔적은 주민들이 쓰는 언어를 제외하면 급격히 퇴색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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