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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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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군 ==== 매년 수백 명의 루이나군 장병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상태가 1980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루이나 정부는 철군을 단행한다. 계기는 루이나 본국의 정변이었다.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이 무너지고 제4공화국이 들어서자, 새 정부는 알티노 사건을 비롯한 군정의 콘스탄티노폴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결론은 더 이상 버틸 명분도, 버텨서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1981년 2월 루이나 의회는 양원에서 「콘스탄티노폴 주둔군 철수 결의」를 가결했다. 루이나는 철수에 앞서 자치정부의 국제연합 가입을 서둘렀는데, 주권국으로 인정받은 정부에 권한을 넘기고 떠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자치정부는 1981년 9월 국제연합에 가입했고, 두 달 뒤인 11월 30일 마지막 루이나군 부대가 남항구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이날 남항구 사령부에서는 루이나 국기 하강식이 열렸다. 하강식에 참석한 자치정부 인사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고, 수송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3시간 만에 텅 빈 사령부 건물은 약탈당했다.] 루이나는 철수하면서 자치정부 방위대에 넘겨준다는 명목으로 M67 무반동포, FN-FAL 소총, 박격포 등 상당량의 중화기를 남항구와 북부 교외의 임시 보급창고에 남겨 두었다.[* 이 무기들은 루이나군이 "임시 보급창고"에 남기고 간 것이며, 철수 직후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루이나 측 인수인계 문서에 기재된 소총만 2만 6천여 정이었다.] 이 무기들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는 철수 당시에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1970년 5월 침공부터 1981년 11월 철군까지, 11년 7개월에 걸친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개입의 인명 피해는 다음과 같이 집계된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BA0E09><bgcolor=#BA0E09> {{{#FFBF00 '''구분'''}}} ||<bgcolor=#BA0E09> {{{#FFBF00 '''사망'''}}} || || 루이나군 || 4,318명 || || 루이나 민간 계약자 || 612명 || || 자치정부 보안군 || 약 9,700명 || || 무장세력 || 3만 명 이상 (추정) || || 민간인 || 7만 1천~12만 8천 명 (추정) || 루이나군 사망자에는 침공 당시의 전사자 406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부상자는 약 2만 9천 명에 달했다. 민간인 사망자는 조사 주체와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커서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점령 기간 중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된 사람은 1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인명과 예산을 쏟아붓고도 루이나가 콘스탄티노폴에 남긴 것은 무너지기 직전의 자치정부와 수만 정의 총, 그리고 서로를 증오하는 수십 개의 무장세력이었다. 이는 명백한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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