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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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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정과 정리 작전 ==== 1978년 루이나 본국에서 제3공화국이 무너지고 [[국가비상위원회]]의 군정이 들어서자, 콘스탄티노폴 정책도 강경 일변도로 바뀌었다. 군정은 1978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이른바 '정리 작전'을 벌여 저항세력의 거점으로 의심되는 구역을 차례로 봉쇄하고 15세 이상 남성을 일괄 연행했다. 연행자들은 북부 교외의 옛 인민군 병영을 개조한 알티노 구금시설로 보내졌는데, 최대 수용 인원이 9천 명에 달했던 이 시설에서는 구타와 고문, 가혹 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알티노 구금시설의 실상은 1980년 10.24 시민혁명 이후 이 시설에서 복무했던 병사가 촬영한 사진이 루이나 언론에 공개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 '알티노 사건'은 군정의 콘스탄티노폴 정책 전반에 대한 조사로 이어졌다.] 1979년 6월 7일에는 정화전선의 카라즈다가 동부 외곽의 은신처를 겨냥한 루이나 공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그의 은신처에서 칼라미 시장 폭탄테러의 계획 문서가 발견된 것도 이때였다. 카라즈다의 죽음으로 정화전선은 여러 분파로 쪼개졌지만, 그가 훈련시킨 전투원들과 그가 벌려 놓은 증오는 그대로 남았다. 정리 작전은 수치상으로는 저항세력의 공격 건수를 일시적으로 줄였지만, 알티노에서 풀려난 수천 명의 남자들은 대부분 풀려나자마자 무장세력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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