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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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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피로 ==== 콘스탄티노폴 점령이 이어진 1970년대는 루이나 본국에서도 [[검은 10년]]이라 불리는 혼란기였다. 극좌와 극우의 무장조직이 도심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정치인과 법관이 납치되고, 역에서 폭탄이 터지는 나라에서 해협 너머의 점령지는 국민의 관심에서 점점 밀려났다. 관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피로와 냉소가 남았다. 침공 직후인 1970년 6월 71%에 달했던 개입 지지율은 칼라미 시장 폭탄테러가 일어난 1974년에 44%로, 세르미 광장 사건 이듬해인 1977년에는 23%로 떨어졌다. 징집병을 교대로 파견하는 구조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콘스탄티노폴에 파견된 루이나군의 대부분은 징집병이었고, 1년 단위로 교대되는 이들은 점령지의 지형과 언어를 익힐 무렵이면 귀국해야 했다. 귀국한 병사들이 전하는 '과부의 길'과 '유리 상자'의 이야기는 정부의 공식 발표와 전혀 달랐다. 청북전쟁 반대 운동이 징병 제도 자체를 겨누기 시작하자, 해협 건너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점령 역시 같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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