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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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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무처와 '더러운 전쟁' ==== 구역 전쟁이 한창이던 1975년, 루이나에게는 콘스탄티노폴에 병력을 늘릴 여력이 없었다. 그해 가을 [[청북전쟁]]에서 회색의 불꽃 작전이 시작되면서 루이나군의 병력과 예산의 우선순위는 그쪽으로 넘어갔고, 콘스탄티노폴은 루이나 언론에서조차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잊힌 전쟁'이 되었다. 증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루이나가 택한 것은 적은 병력으로 판을 흔드는 비밀 공작이었고, 그 일을 맡은 것이 국방부 [[특무처]]였다. 특무처의 공작은 크게 세 갈래였다. 첫째는 저항세력과 싸울 '협력 민병대'의 육성이었다. 특무처는 칼라미의 혼혈계 자경단과 저항세력에 원한을 가진 일부 빌베른계 민병대에 무기와 자금을 대 주었는데, 이 민병대들은 저항세력뿐 아니라 상대 공동체의 민간인에게도 그 무기를 썼다. 구역 전쟁의 사망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루이나가 무장시킨 민병대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은 점령이 끝난 뒤에야 알려졌다. 둘째는 저항세력 지도부에 대한 표적 암살이었다. 셋째는 이 모든 활동의 자금을 의회 예산 밖에서 조달하는 일이었는데, 특무처는 콘스탄티노폴의 암시장에서 압수한 무기와 아편을 되파는 방식으로 장부에 없는 돈을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아편 유통 경로는 점령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976년 이후 [[올덴버그 마피아]]가 루이나 남부의 아편 유통망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폴산 아편이 주요 공급원 가운데 하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점령 후반부에는 루이나의 민간 경비업체들도 대거 콘스탄티노폴에 들어왔다. 병력이 모자란 루이나군은 보급 호송과 안전지대 경비, 자치정부 요인 경호를 민간 업체에 맡겼는데, 이들 경비원은 콘스탄티노폴의 법도, 루이나의 군법도 적용받지 않는 법적 공백 상태에 있었다. 1976년 8월 19일, 자치정부 각료의 차량 행렬을 호위하던 루이나 경비업체 직원들이 세르미 광장에서 접근하던 승용차에 발포한 뒤 광장의 군중을 향해 난사해 어린이 4명을 포함한 민간인 17명이 숨졌다. 업체는 공격을 받아 대응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에서 공격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건에 연루된 경비원들은 아무런 처벌 없이 루이나로 귀국했다. 이 '세르미 광장 사건'은 자치정부조차 공개적으로 루이나에 항의한 몇 안 되는 사례로 남았다. 1977년 루이나 본국에서 특무처가 폐지되면서 콘스탄티노폴에서의 공작도 후신 조직으로 넘어갔다. 이관된 공작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까지도 대부분 기밀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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