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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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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정부의 급조 ==== 기동전 중심의 작전으로 도시의 요충지들을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점령 이후의 병력은 형편없이 부족했고 전후 재건을 위한 계획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루이나 정부의 목표는 처음부터 '빨리 넘기고 빨리 빠지는 것'이었다. 침공에 투입된 3만 8천여 명의 병력은 이듬해 6월까지 1만 4천 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1970년 11월 16일, 루이나는 그 상태를 '자치의 시작'이라며 콘스탄티노폴 자치정부를 급조해버렸다.[* 해당 정부는 루이나 국무부 외교안보국 직속의 임시통치위원회가 관할했으며, 초대 행정관은 벨포르 출신 전직 외교관 앙드레 P. 르쿠르브였다. 르쿠르브는 콘스탄티노폴의 공용어를 하나도 구사하지 못해 모든 업무를 통역을 거쳐 처리했다.] 자치정부의 각료와 고위 관료는 대부분 루이나에서 돌아온 망명객들로 채워졌다. 1947년 내전에서 패해 루이나로 건너간 왕정파의 후손, 3월 혁명 이후 추방된 스타투드라 정권의 관료들, 그리고 조차지 시절 루이나 조차지 당국 밑에서 일하던 매판 가문 출신들이었다. 시민들이 보기에 자치정부는 한 번은 내전으로, 한 번은 혁명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외국 군대를 등에 업고 돌아온 정부였다. 루이나군과 자치정부는 남항구와 옛 세관 구역 일대를 장벽과 검문소로 둘러싼 '남항구 안전지대'에 틀어박혔다. 11년 전까지 루이나의 조차지였고, 루이나 외무부의 비밀 문서가 '전략적 안보지대'로 지목했던 바로 그 구역이었다. 안전지대 안에는 24시간 전기와 수돗물이 공급되었고, 시민들은 이곳을 '유리 상자'라고 불렀다. 밖에서는 안이 훤히 보이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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