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콘스탄티노폴/역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민정이양위원회 ==== 1970년 6월 2일 출범한 민정이양위원회는 해군 중장 필리프 A. 들로름을 초대 위원장으로 했고, 8월부터는 민간인 위원장 체제로 바뀌었다. 위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혁명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6월 9일 공포된 위원회 명령 제1호는 신보석운동 당원의 공직 취임을 금지했고, 6월 14일의 명령 제2호는 인민군과 인민보안부, 인민민병대를 해산했다. 이 두 명령은 점령 초기 최대의 실책으로 꼽힌다. 혁명정부 10년 동안 공무원과 교사, 인민 진료소의 의사가 되려면 사실상 당원이어야 했기 때문에, 명령 제1호로 공직에서 쫓겨난 사람은 4만 3천여 명에 달했다. 하룻밤 사이에 학교와 진료소, 배급소를 운영할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명령 제2호로 해산된 인원은 서류상의 민병대까지 합쳐 12만 명에 이르렀는데, 위원회는 이들의 무기를 회수하는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자진 반납된 무기는 추정 보유량의 11%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루이나는 총을 가진 채 일자리와 연금을 동시에 잃은 수만 명의 남자들을 거리로 내보낸 셈이 되었다. 같은 시기 도시 곳곳에서는 약탈이 벌어졌다. 루이나군은 남항구와 석유 저장소, 에스테리 곶 공항에는 병력을 배치했지만, 국립문서고와 옛 총독부 공문서고에는 경비병 한 명 두지 않았다. 5월 하순 나흘 동안 두 문서고는 약탈당한 뒤 불탔고, 빌베른 통치기부터 공화국 시기까지의 행정 기록 대부분이 이때 소실되었다.[* 오늘날 독립 이전 콘스탄티노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1차 사료가 극히 드문 것은 대부분 이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빌베른 본국에 보관된 사본이나 해외로 반출되었던 문서가 대부분이다.] 시민들은 전기와 수도, 식량 배급이 끊긴 상황에서 방치되었다. 침공 당시의 포격으로 도시 최대의 발전소가 파손되었고, 혁명정부가 운영하던 배급망은 명령 제1호로 그 운영자들이 모두 쫓겨나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1970년 여름 콘스탄티노폴에서는 하루 전기 공급이 4시간을 넘는 구역이 거의 없었고, 빵 한 덩이 값이 두 달 만에 여섯 배로 뛰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