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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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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정복고 내전 ==== 독립은 곧바로 '누가 이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낳았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왕정파였다. 해협 분가의 방계 후손인 아우렐리아누스 포르틸락 공을 옹립한 왕정파는 옛 왕가의 정통성을 내세워 왕정복고를 주장했고, 해협 분가와 혼인으로 얽혀 있던 해상 귀족 및 일부 도시 귀족이 이들을 지지했다. 열두 집 가운데 일부도 왕정 아래서 기득권을 지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뒤에서 자금을 댔다. 1946년 3월, 왕정파는 언덕의 옛 별궁 지구에서 포르틸락 공의 즉위를 선포했다. 이에 맞서 벨라스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파는 '공화수호위원회'를 결성했고, 수비대 병력의 대다수가 공화주의파를 따랐다. 이후 14개월 동안 이어진 내전은 별궁 지구와 구시가 사이의 시가전으로 전개되었는데, 전선이 조차지 경계와 맞닿아 있었던 탓에 전투는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왕정파는 불리해질 때마다 조차지 안으로 몸을 피했고, 조차지 경찰은 공화주의파 병력의 추격을 막았다. 그럼에도 병력과 화력에서 앞선 공화주의파가 점차 언덕을 포위해 들어갔고, 1947년 5월 별궁 지구가 함락되면서 내전은 공화주의파의 승리로 끝났다. 왕정파는 사실상 전멸했고, 포르틸락 공을 비롯한 일부만이 루이나나 체르드로 망명했다.[* 사실상 전멸했고 일부는 루이나나 체르드로 망명했다. 루이나로 건너간 망명 왕정파는 이후 벨포르의 보수 정계와 연을 맺으며 콘스탄티노폴 역대 정권에 대한 루이나의 적대 여론을 조성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 내전으로 '바다 위의 궁정'의 별궁 상당수가 불타거나 무너졌고, 옛 왕족의 영지는 모두 몰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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