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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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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양도와 독립 ==== 니에미이 조약 이후 계속된 빌베른의 정치 불안은 결국 콘스탄티노폴을 빚값으로 넘기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1945년 6월 2일 빌베른과 루이나는 캄피톨랴에서 「콘스탄티니예 양도 협정」에 서명했다. 루이나가 니에미이 조약에 따라 누적된 미지급 이자를 탕감하는 대신, 빌베른은 콘스탄티노폴의 주권을 루이나에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이자 탕감은 비준과 동시에 효력을 발생하고, 주권 이양은 인수인계 기간을 거쳐 10월 1일에 이루어지도록 했다. 빌베른 원로원은 6월 20일 협정을 비준했다. 협정 소식이 전해지자 도시는 즉각 반발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나머지 여덟 개 조차지 국가였다. 이들의 영사단은 공동 각서를 내고 "조차 계약은 빌베른과 맺은 것이며, 조차국의 동의 없이 제3국에 승계될 수 없다"면서 루이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루이나가 도시 전체의 주인이 되면 자신들의 조차지가 루이나의 손바닥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구시가의 빌베른계 주민들 역시 루이나의 신민이 되기를 거부하며 총파업에 들어갔고, 수년째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던 수비대는 지휘관 가이우스 벨라스 대령의 결정에 따라 주민 편에 섰다. 1945년 8월 27일, 구시가의 구역 대표와 노조, 수비대, 열두 집의 대표로 구성된 시민대표회의는 총독 관저에서 콘스탄티노폴의 독립을 선언했다. 주권 이양일인 10월 1일이 오기 전이었으므로, 이 독립은 법적으로 빌베른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마지막 빌베른 총독은 시민대표회의에 관인을 넘겨준 뒤 빌베른으로 향하는 마지막 정기선에 올랐다.[* 총독이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공문은 체불된 수비대 봉급 명세서였다고 한다.] 여덟 개 조차지 국가는 새 정부가 기존 조차 계약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자 몇 주 사이에 차례로 독립을 승인했다. 약하고 새로운 독립국이 강한 루이나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10월 1일, 루이나에게는 넘겨받을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루이나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여덟 나라의 공동 전선과 전쟁 직후의 피로 속에서 무력을 쓰지는 못했다. 결국 루이나는 1947년 자국 조차지와 하트웰 광업의 채굴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새 공화국을 승인했다. 이미 비준된 이자 탕감은 되돌릴 수 없었다. 루이나는 받을 이자도 포기하고 받기로 한 땅도 받지 못한 셈이 되었고, 이 협정은 루이나 외교사에서 대표적인 자충수로 꼽힌다.[* 루이나 의회의 한 의원은 이 협정을 두고 "빚도 못 받고 땅도 못 받은 계약서"라고 불렀다. 이때 생긴 콘스탄티노폴에 대한 루이나 정계의 앙금은 이후 이 도시를 대하는 루이나의 태도 전반에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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