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청평/역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제2차 반격과 정전 === 수도 함락 이후 청평의 항전은 국토해방인민전선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잔존 군 간부와 지방 조직은 산악과 농촌의 저항을 점령 도시의 지하 조직과 연결했고, 정권에 비판적이던 집단까지 외국군 철수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했다. 도시에서는 고요한 폭풍 작전으로 불리는 저항이 점령 행정을 흔들었고, 산악의 짜로 고개와 해안의 꽁룩 항구에서도 전투가 이어졌다. 한때 루이나의 조차지였던 꽁룩에서 루이나군과 다시 싸우게 된 것은 청평인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해상 민병 조직인 흑조함대는 연합군의 연안 수송을 괴롭혔다. 1976년 전쟁은 수도와 항만을 지키는 연합군과 농촌·산악을 되찾은 청평 사이의 소모전으로 굳어졌다. 1977년 봄 연합군이 주요 거점 중심으로 병력을 줄이자 청평은 영향력을 되찾았지만, 남은 점령지를 모두 되찾을 여력은 없었다. 1977년 7월 27일 스위스 바젤에서 유엔의 중재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국경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고, 띠에우리엔을 비롯한 점령지의 행정권은 단계적으로 청평에 반환되었다. 대신 청평은 루이나가 주도하는 평화감시단의 완충지대 운영과 무기 수입의 사전 통보 의무를 받아들여야 했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청북전쟁]] 문서 참고.}}}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