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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독부 통치 === 북산은 청평 황실을 폐위하고 희안제와 그 직계를 북산으로 옮겨 신린 근교에 연금했다. 띠에우리엔에는 임시 군정청이 설치되어 북산군 총사령관 나카무라 겐로쿠가 초대 총독을 맡았고, 1931년 군정청은 청평 총독부로 개편되었다. 총독부는 수도와 북부 평야, 철도 연선과 해안 항구를 직접 통치했으나 광대한 남부와 산악 지대까지 관리할 인력은 없었다. 이 때문에 투항한 옛 관료와 군벌, 지방 유력자를 하급 행정에 기용하는 간접 통치가 병행되었고, 북산의 지배는 도시와 교통로를 중심으로 한 '점과 선의 지배'에 가까웠다. 식민 통치의 목적은 북산 본국의 산업화와 재정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으로 소유가 불분명한 토지가 총독부와 북산 기업으로 넘어갔고, 쌀과 광물이 대량으로 반출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북부 평야에서 생산된 쌀의 3분의 1 이상이 북산으로 실려 갔고, 그 사이 청평 농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침공 이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철도와 항만은 반출과 군수를 위해 확장되었지만 청평인의 이용은 제한되었다. 학교 교육은 북산어로만 이루어졌고, 청평어는 공식 영역에서 금지되었으며 청평의 역사와 전통 의례는 '낡은 미신'으로 탄압받았다. 북산 본국에서 약 50만 명의 농민과 소상인, 퇴역 군인이 건너와 몰수된 토지와 도시 상권을 차지했다. 총독부는 식민 통치에 협력하는 청평인 조직도 만들었다. 1933년 설치된 청평 참의원은 옛 황실 관료와 투항한 군벌, 지주들로 구성된 자문 기구로, 총독의 정책을 청평인의 이름으로 추인하는 역할을 했다. 남부의 여러 군벌은 자기 지역의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총독부에 세금과 병력을 바쳤다. 이들 협력자 가운데 상당수는 1940년대 후반 대세가 기울자 혁명군 쪽으로 돌아섰는데, 이 때문에 혁명 이후 협력자 처벌은 누가 언제 돌아섰는가를 둘러싼 복잡한 다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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