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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공 === 1928년 청평-북산 국경의 미엔선(綿山)에서 북산인 상인 일행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청평 조정은 조사와 배상을 제안했으나, 북산 군부와 우익 단체는 이를 청평의 무능과 적의의 증거로 선전했고 국경에 병력을 증강했다. 1929년 4월 북산은 청평을 침공했다. 청평에서는 이를 제1차 청북전쟁, 북산에서는 청평 침공이라 부른다. 청평군은 병력 규모에서 북산군을 크게 웃돌았고 일부 부대는 외국제 소총과 야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황실 직속군과 지방군, 군벌의 사병으로 나뉘어 통일된 지휘를 받지 못했고, 일부 군벌은 북산과 비밀리에 협상하며 싸우지 않았다. 국경 요새는 개전 며칠 만에 무너졌고, 북산군은 철도를 따라 남하하며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 7월 띠에우리엔이 포위되었고, 8월 2일 마지막 황제 희안제(熙安帝)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1412년 이래 517년을 이어 온 청평대제국은 이로써 사실상 멸망했다. 황제의 항복은 청평 사회를 둘로 갈랐다. 궁정의 대신들 상당수는 황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들였으나, 일부 황족과 근위대 장교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남부 산간으로 탈출해 저항을 이어 갔다. 황제가 적에게 나라를 넘겼다는 인식은 이후 청평 민족주의가 황실과 거리를 두는 계기가 되었고, 20년 뒤 혁명 정부가 황실을 복원하면서 마지막 황제의 직계가 아닌 방계를 고른 배경이 되었다. 청평의 멸망은 남쪽의 책봉국에도 미쳤다. 같은 해 11월 북산 함대가 남꽝 왕국의 수도 티삼응우지 앞바다에 나타났고, 북산은 남꽝과 티삼응우지 조약을 맺었다. 조약 제1조는 남꽝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고 청평에 대한 일체의 전례를 폐지한다고 규정했으나, 부속 의정서는 북산 고문의 국정 참여와 외교 사무의 북산 경유, 북산군의 주둔을 규정했다. 국호도 청평과의 연결을 지우는 '동사랜드 왕국'으로 바뀌었다. 1420년 이래 509년 이어진 남꽝의 책봉 관계는 이로써 끝났고, 청평을 중심으로 한 책봉 질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청평 침공]] 문서 참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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