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청평/역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녹기의 난과 군벌의 등장 === 19세기 후반 청평을 가장 크게 뒤흔든 것은 외세가 아니라 내란이었다. 1856년 남부에서 일어난 녹기(綠旗)의 난은 세금과 부역, 토착민과 한족 사이의 토지 분쟁이 겹쳐 폭발한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한때 수십만의 병력을 거느리며 남부 여러 성을 장악했다. 반란은 12년 만에 진압되었으나 전란과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녹기의 난을 이끈 것은 토착 신앙의 무당 출신인 응우옌 티 란(阮氏蘭)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는 산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몽골 시대 이래 빼앗긴 토착민의 땅을 되찾고 모든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녹색 깃발은 산과 숲의 신을 상징했다. 반란은 토착민의 봉기로 시작했지만 곧 가난한 한족 소작농까지 끌어들였고, 이 때문에 조정은 이를 단순한 민족 반란이 아니라 체제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청평의 공식 역사는 녹기의 난을 '최초의 농민 혁명'으로 평가하며 1949년 혁명의 선구로 서술한다. 반란을 진압한 것은 황실의 군대가 아니라 지방 총독들이 모은 의용군이었다. 진압 이후 이들 군대는 해산되지 않고 총독의 사병으로 남았고, 지방의 조세와 인사를 장악한 총독들은 사실상의 군벌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황실의 권위는 수도 띠에우리엔 주변에만 미쳤고, 각지의 군벌은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열강과 손을 잡았다. 1920년대 청평은 명목상 하나의 제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군벌 정권이 병존하는 상태였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