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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려우 다이와 흑강 전투 === 14세기 말 각지의 봉기 세력은 점차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였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려우 다이(廖代)였다. 토착 귀족의 후예였던 그는 젊은 시절 몽골군에 포로로 잡혀 오랫동안 복무하며 몽골의 전술과 행정을 익혔다. 려우 다이는 몽골의 쇠퇴를 기회로 삼아 토착민과 한족 농민, 심지어 일부 몽골계 귀족까지 끌어안아 거대한 연합군을 조직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409년의 흑강 전투였다. 려우 다이의 군대는 청평 북부의 흑강 유역에서 몽골 기병대를 기습과 지형 활용으로 격파했고, 이 승리로 청평의 독립은 사실상 확정되었다. 잔존 몽골군은 패퇴하거나 항복했으며, 일부는 현지에 정착해 청평 사회에 흡수되었다. 려우 다이가 세력을 키우던 14세기 말, 북쪽의 옛 소나라 땅은 둔전군 지휘관 출신 영주들이 싸우는 전국시대에 있었다.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이주민 일부가 려우 다이의 군대에 합류했고, 북쪽 영주들 가운데에는 몽골 잔존 세력을 함께 몰아내기 위해 려우 다이와 손잡은 이들도 있었다. 1398년 카게무라 하세가와가 북쪽을 통일한 뒤에도 두 세력은 국경 지대의 몽골 잔존 세력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경계를 확인하는 관계를 이어 갔다. 청평의 사서는 북방 세력의 협력을 오랑캐들이 려우 다이의 덕을 흠모해 귀순한 것으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양쪽 모두 몽골 이후의 공백을 메우려는 실리적인 제휴였다. 1412년 려우 다이는 띠에우리엔에 입성해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청평대제국(靑平大帝國)이라 정했다. 옛 토착민의 자칭을 국호로 되살린 것은 분열과 굴욕의 시대를 끝내고 청평인 스스로의 국가를 세웠다는 선언이었다. 청평은 이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전역을 아우르는 통일 왕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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