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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 이주와 한족의 정착 === 몽골은 청평을 제국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대규모 강제 이주 정책을 폈다. 특히 인구가 많고 농업 기술이 발달한 화북의 한족을 청평의 강 유역과 평야로 대거 이주시켜 황폐해진 농지를 되살리고 토착민의 저항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주는 13세기 중엽부터 14세기 초까지 여러 차례 이어졌고, 그 규모는 북쪽의 소나라로 보내진 이주민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는 청평 사회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토착 귀족과 군장 세력은 몰락했고, 토착민의 토지는 빼앗기거나 쪼개져 이주민에게 넘어갔다. 청평 사가는 이 시기를 '몽골의 굴욕'이라 기록하며, 외세의 침략을 넘어 정체성의 붕괴로 인식했다. 토착민과 한족 이주민 사이의 갈등은 이후 수 세기 동안 청평사에서 되풀이되는 민족적 긴장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강제 이주는 새로운 농업 기술과 문화를 가져왔다. 청평의 농업 생산력은 크게 늘었고, 몽골을 거치는 국제 교역망 속에서 새로운 사상과 종교, 기술이 들어왔다. 한자와 한문 행정, 불교와 도교가 이 시기에 청평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몽골의 통치 구조는 청평 사회를 세 층으로 나누었다. 최상층에는 몽골 귀족과 서역 출신 관리가 있었고, 그 아래에서 한족 이주민 가운데 문서 행정에 능한 이들이 서리와 징세 청부인으로 일했다. 토착 청평인은 가장 아래에 놓여 무거운 부역을 졌다. 이 구조에서 한족 서리층은 몽골의 대리인이자 토착민의 직접적인 수탈자로 인식되었고, 이것이 민족 갈등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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