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청북전쟁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띠에우리엔 대학살 === 수도 점령 직후 루이나군과 북산군 일부 부대는 주민과 구금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살해와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띠에우리엔 대학살'''은 청북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민간인 피해 사건으로 꼽힌다. 시청 광장과 라미엔 구역, 제2공립학교, 구시장 일대 등이 주요 피해 장소로 거론된다. 폭력은 유격대 색출과 보복, 점령지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 주민에 대한 자의적인 분류와 구금, 재판 없는 처형, 고문·약탈·성폭력이 발생했으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가족과 피란민도 피해를 입었다. 특히 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살해는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민간인 피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희생 규모에 대해서는 '''1만 8,000명 이상'''이라는 비공식 추산이 제시되어 있다. 다만 집계 범위와 산정 근거가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를 확정 통계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수도 공방전 중의 사망자, 점령 후 학살 피해자, 실종자, 이후 부상과 구금으로 사망한 사람의 범위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전쟁 전체의 사망자 수와도 구분해야 한다.] 대학살은 연합군의 정치적 목표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점령행정에 협조하려던 주민과 중간 세력이 이탈했고, 청평 정부에 비판적이던 집단도 외국군 철수를 우선적인 과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국제적 비난과 루이나 국내의 반전 여론도 확대되었다. 피해자 증언과 사진·영상의 공개는 전투의 성과보다 전쟁의 정당성을 전면에 부각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