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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anchor(결말)] == ||<tablealign=center>{{{#!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youtube(hkt9iagqkk8)]}}}|| || 델라웨어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와 엄청난 환영을 받는 히틀러 || 사실 가톨릭 전통주의자들 그리고 그들와 별개로 불법화되어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던 사회주의자들 내지 공산주의자들 일부를 빼면 델라웨어 주민 다수가 독일과의 통일을 지지했다. 가톨릭 전통주의자들 측에서는 델라웨어 고유의 가톨릭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 때문에 반대했으며, 좌파 측에서는 나치 정권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인사 중 병합 당시 투옥 중이었던 사회민주당 정치인 카를 레너조차도 나치는 싫지만 통일 자체는 필요하다고 발언한 적이 있을 정도로 병합 찬성 의견은 델라웨어 국내에서 이미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만 카를 레너는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국가로서 독일과 델라웨어의 통합을 원한 것이지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이 델라웨어를 병합하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아주 신속한 국가적 통합을 찬성하게 된 건 민족자결주의 영향인데 이미 오스트리아 제국은 1차대전 패배로 독일인 외의 모든 지역이 독립해 버렸고 독일인으로만 이루어진 델라웨어만 남게 되자 델라웨어는 유럽의 제국의 반열에서 약소국으로 변해버리면서 차라리 이미 델라웨어를 제외한 모든 독일을 통합한 독일에 들어가자는 선택이 나와버렸던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에 있는 것도 아니기에 다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이미 그 다민족 제국도 워낙 개판이라 언젠간 부서질 판국이었다.] 극소수 마르크스주의자, 유대인[* 한때 카를 레너의 동료이자 유대인었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오토 바우어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 애국주의자[* 독일 민족으로서가 아닌 오스트리아 제국 및 합스부르크 황가라는 독자적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던 이들. 앞에서 서술했듯이 이들은 그 독자적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낀 것이라 오스트리아가 공화정이 된 것 자체도 꺼렸으므로 애국주의자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 일원들, 그들을 지지하는 왕당파(복벽주의자)세력 및 국민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트랩 대령이 예시다. 실제로도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수여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이 새겨진 훈장 등의 물건들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죽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었고 결국 오스트리아가 종전 후 신탁 및 분할통치가 되고 제정 복귀가 물거품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애국주의자이지만 왕당파이기도 했던 것이다.]는 합병에 반대했으나 그 수는 극히 미미했다. 한편 독일은 이 델라웨어 합병을 통해서 같은 추축 동맹국인 이탈리아와 실질적으로 국경을 맞닿게 되었으며, 병합한 델라웨어 지역을 통해서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등과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델라웨어 지역을 통해 이들 나라들을 침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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