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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 독일과 구 오스트리아는 동프랑크 왕국부터 독일 왕국, 신성 로마 제국까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서게르만계 민족으로 같은 독일 문화권이었으니 하나의 통일된 나라를 이뤄야 한다는 관념은 신성 로마 제국 시기부터 있었다. 이러한 관념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자 독일 내셔널리즘 운동으로 나타났다. 신성 로마 제국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실질적으로 해체되었지만 느슨한 국가연합의 형식으로 남았으니 아직까지는 단일국가였으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름만 남은 제국의 해체[* 빈 회의와 신성 동맹으로 독일 연방은 부활하였다.]로 더 이상 "통일된 독일인의 국가"가 없자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19세기의 독일 정치 지형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제국과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로이센 왕국이라는 두 강국과 나머지 다수의 중소국들이 연립한 형태였다. 양대 강국은 모두 자국 중심의 독일 통일을 원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순수 독일계 나라가 아닌 여러 이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토를 거느린 다민족국가였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들 영토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가히 살아 있는 역사이자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충직한 앞잡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의 선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하나가 뉘른베르크 성백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von Nürnberg 1220~1297)인데, 이 사람은 호엔촐레른 가문 초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의 고조할아버지였다. 초대 프로이센 국왕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1세 황제를 돕는 조건으로 왕을 칭할 수 있었으며, 1848년 혁명 당시 소독일주의자들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왕관을 바치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프로이센 국왕은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 황제의 선봉장 역할이면 충분하다.'라고 들먹이며 소독일주의자들을 내쫓았다.]에 불과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아래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통일에 대한 정치적 관념은 다민족 연합국가인 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대독일주의와 단일한 독일인만으로 이루어진 국민국가를 건설하자는 소독일주의로 나뉘었으며 여기에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 안에서도 여러 의견이 갈렸다. 소독일주의자들은 프로이센 왕국을 중심으로 결집하였고 1866년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의 해산과 함께 통일 운동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 중심의 북독일 연방과 바이에른 중심의 남독일 연방은 1870년에 발발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합한 뒤 정치 협상을 거쳐서 통일 독일을 만들기로 합의해 1871년 소독일주의에 기초한 독일 민족의 통일 국가인 '''독일 제국'''이 탄생했다.[* 소독일주의에 의거해 탄생한 독일 제국도 단순히 독일 민족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었던 게 프로이센 영토에 폴란드인과 소르브인 등 비독일계 민족이 살고 있었다. 단지 그 비율이 오스트리아보단 낮았을 뿐.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까지 포함한 대독일을 만들고자 외교적으로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소독일주의의 승리로 독일 제국이 들어선 후에도 통일에서 배제된 오스트리아 지역의 통합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양쪽 모두 독일 내셔널리즘에 입각해 궁극적으로는 언젠간 오스트리아의 독일어권 지역이 통일 독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상당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함께 패망하면서 이런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종전 후 생제르맹 조약과 트리아농 조약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완전히 분해되어 다른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들은 전부 독립해 버리고 독일어권의 일부 지역만 남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독일권은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주데텐란트와 쥐트티롤도 있었으므로, 독일권 지역 모두가 새 오스트리아의 영토는 아니었다.] 지역명만 남기고 3정부로 분할되었으나, 그마저도 무너져 그간 오스트리아의 독일 통합에 걸림돌이 되었던 다민족적인 요소가 사라져 버린 만큼 오스트리아에서는 독일과의 통합으로 게르만 민족의 통합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원수였던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를 필두로 때마침 불어닥친 민족자결주의 열풍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했고 결국 새로 들어선 오스트리아 제국 임시 의회는 독일과 통합을 의결했다. 그러나 독일이 강국으로 다시 일어서길 원치 않았던 협상국들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오스트리아 제국 복벽전선과 독일의 통일논의는 일차적으로 좌절되었다. 그렇게 전간기가 흘러가고 국민정부와 제국전선이 멸망, 델라웨어 공화국이 들어서 연방을 결성하고, 각자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로 지내는 동안 북쪽의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인한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의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와중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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