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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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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노프와 벨랴예프 === 브레자코프의 뒤는 정치국 원로 [[알렉세이 체르노프]]가 이었다. 그는 노동 규율 강화와 부패 척결을 내걸고 브레자코프 시대에 굳어진 지방 간부들을 일부 교체했으나, 집권 1년여 만인 1984년 초 병으로 사망했다. 후임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선출 당시 이미 고령에 병을 앓고 있었고, 1985년 사망할 때까지 1년 남짓 재임했다. 3년 사이 서기장 세 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자, 사비에트 안에서도 '장례식 정치'라는 자조가 퍼졌다. 이 시기 사비에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나라였다. 고랜드의 전쟁은 교착에 빠졌지만 철군을 입에 올리는 지도자는 없었고, 성장률이 바닥을 기는 가운데에도 계획 당국은 브레자코프 시대의 목표치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정치국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기면서, 당 안의 젊은 간부들 사이에서는 세대 교체 없이는 체제가 버티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져 갔다. 원로 정치의 공백 속에서도 궤도의 대치는 이어졌다. 1984년 [[마테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사비에트는 교전 당사국이 아니었지만, 루이나군 전체가 전시 태세에 들어가면서 두 나라의 경계 수위도 높아져 있었다. 이 와중인 5월 11일 사비에트가 정지궤도에 올린 「궤도 연구 위성 1127호」가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비에트는 벨포르-크라슬리스크 직통선으로 17차례 교신하며 추진기 고장으로 표류 중인 시험기라고 설명했으나, 위성이 40km까지 다가오자 루이나는 전략잠수함을 출항시켰다. 제1차 우주경쟁에서 두 나라가 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으로 꼽히는 [[정지궤도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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