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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 통치 === 북산은 청평 황실을 폐위하고 띠에우리엔에 임시 군정청을 설치했다. 나카무라 겐로쿠가 초대 총독을 맡았고, 1931년 군정청은 청평 총독부로 개편되었다. 총독부는 수도와 북부 평야, 철도 연선과 해안의 항구를 직접 통치했으나, 광대한 남부와 산악 지대까지 관리할 인력은 없었다. 이 때문에 총독부는 투항한 옛 관료와 지방 유력자를 하급 행정에 기용하는 간접 통치를 병행했고, 북산의 지배는 도시와 교통로를 중심으로 한 '점과 선의 지배'에 가까웠다. 식민 통치의 목적은 본국의 산업화와 재정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으로 소유가 불분명한 토지가 총독부와 북산 기업으로 넘어갔고, 곡물과 광물이 대량으로 반출되었다. 철도와 항만은 반출과 군수를 위해 확장되었으나 청평인이 이를 이용할 권리는 제한되었다. 학교 교육은 북산어로만 이루어졌고, 청평어 사용과 전통 의례는 억압되었다. 북산 본국에서는 농민과 소상인, 퇴역 군인 등 약 50만 명이 식민지로 건너가 정착했는데, 이들은 1949년 이후 본국으로 돌아오는 인양자의 대부분을 이룬다. 식민지는 북산 사회의 자기 인식도 바꾸었다. 정부와 언론은 청평 지배를 '동방의 신질서'라 부르며, 수백 년 동안 조공을 바치던 나라가 이제 옛 종주국을 문명화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선전했다. 학교에서는 조공 시대를 굴욕의 역사로, 1929년을 그 굴욕을 씻은 해로 가르쳤다. 식민지 경영으로 이익을 본 것은 주로 총독부와 연결된 대기업과 군 출신 관료였지만, 식민지 이주와 군 복무를 통해 본국의 농촌 청년들도 제국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저항도 끊이지 않았다. 산악 지대에서는 청평 유격대가 북산군을 공격했고, 도시에서는 비밀결사가 독립을 선동했다. 1937년의 띠에우리엔 봉기는 수천 명이 참가했으나 북산군의 포격으로 진압되어 대규모 학살로 끝났다. 총독부는 저항이 거세질수록 군대의 비중을 늘렸고, 식민지 경영은 점차 본국 재정을 잠식하는 부담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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